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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인재대국] 4. 척박한 토양, 부실한 열매
입력1999-04-14 00:00:00
수정
1999.04.14 00:00:00
김형기 기자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정부출연연구소에 근무하는 C박사(미국 아이오와대 출신·41)의 연구실에는 두개의 책상이 있다. 하나는 연구용이고 다른 하나는 각종 행정업무 처리용이다.
그는 요즘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싶다는 이상한(?) 소망을 갖고 있다.
『업무 경험이 많고 직급이 높은 연구원일수록 연구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진다』는 C박사는 『연구원으로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100%라고 한다면 팀장급 이상 연구원들은 20~30% 정도의 시간만 연구활동에 사용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실토한다.
연구원들에게서 연구시간을 빼앗는 요인은 연구활동 이외의 것들을 요구받기 때문. 정부나 단체가 주관하는 각종 행사 등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물론 심한 경우 관리들과의 술자리에도 빠짐없이 참석해야 한다.
『정부 관리, 기업체 사람들과 돌아가며 일주일에 한두번씩의 술자리를 가졌다. 이렇게 쌓인 친분관계가 나중에 연구팀의 연구과제 수주로 연결되곤 하기 때문이다. 연구에 몰두해야 할 연구원들이 마치 영업사원처럼 정부나 기업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로비전을 펼친다는 기분이었다.』 최근 국책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다 모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N교수(40)의 증언.
대덕연구단지에서 C박사나 N교수 처럼 연구외의 업무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한 연구원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한국의 연구기술인력은 연구성과보다 친분관계가 중요하며 연구활동보다 많은 시간을 행정업무 처리 등에 사용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자조한다.
이러다보니 제대로된 연구결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연구실적을 가늠하는 대표적인 것이 특허 및 실용신안 출원.
특허청에 접수되는 특허 및 실용신안 건수는 지난 97년 13만8,543건에서 IMF이후인 98년 10만4,084건으로 줄어들었다. 올들어 지난 3월말 현재 특허 및 실용신안 출언 건수가 1만9,331건에 불과해 이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연간 8만건에도 못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의 일관성 없는 연구지원정책 역시 지속성이 요구되는 연구·개발 활동에는 걸림돌일 뿐이다.
중국과 공동 개발을 추진하며 불과 1~2년전까지도 높은 관심을 모았던 국책과제 「중형항공기 개발사업」은 현재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실정. 한동안 산업자원부와 과학기술부가 서로 자신들이 주관부서라고 실랑이를 벌이며 물심양면의 아낌없는 지원을 공언했지만 중국이 공동개발을 포기한 이후 이제는 늘어난 자금 부담과 줄어든 관심으로 상대 부처에 떠넘기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항공우주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지금은 그럭저럭 연구를 진행하지만 부처간에 서로 나몰라라 하다보니 내년에도 연구가 이어질지 불투명하다』며 『최근 정부출연연구소 공동 이사회가 구성돼 집행 예산을 자율적으로 배정하도록 했으나 이것 역시 로비력이 좋은 연구소가 우선 지원을 받을 수 밖에 없어 사정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밖에 미래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상현실」, 디지털 시대를 앞당기는 「쌍방향 안테나」 등은 모두 1~2년사이에 지원 우선순위가 뒤바뀌면서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대표적인 연구과제들이다.
연구원에게 행정요원, 심한 경우 영업맨의 능력까지 요구하는 척박한 토양과 걸핏하면 지원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현실.
이같은 풍토에서 풍성한 연구실적이 나올리 만무하다. 최근들어 신기술로 무장한 신제품을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것도 당연한 결과다.
국책연구소에 근무하는 E박사(43)는 『연구·개발의 성과는 누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열을 연구과정에 쏟아붓는지에 달린 것』이라며 『절대 연구시간이 허용되지 않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일관성이 없는 이같은 풍토에서 세계를 대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연구 실적을 기대하는 것은 어찌보면 「사막에서 농사를 짓는 것」보다 무모한 희망일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형기 기자 KKIM@ 박희윤 기자 HYPARK@ 김상연 기자 DREA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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