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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의 고향 충북 옥천, 마을 어귀 들어서면 진한 문향… 호반 위에 펼쳐진 초록 병풍…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부소담악은 군북면 추소리 부소무니마을 앞 호반에 700m가량 펼쳐진 암봉으로 옥천을 대표하는 추소8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정지용문학관.

육영수 여사의 생가. 그가 기거하던 방을 최근 복원한 것이다.

한국 현대시 선구자 정지용 문학관

문학청년의 삶·詩想 세계 등 한눈에

물 위 700m 펼쳐진 암봉 '부소담악'

옥천 대표하는 '추소8경'서도 으뜸

과거 삼정승이 살아 명당으로 불리던

육영수 여사 생가 '교동집'도 명소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한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애송하는 정지용의 시 '향수'는 1927년 그의 나이 스물다섯에 지은 작품이다. 향수가 유명해진 것은 1988년 납북 문인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이념의 뒤안에 유기돼 있던 그의 시가 해금되면서부터다.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이 듀엣으로 부른, 같은 제목의 노래는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매칭이라는 파격을 디딤돌 삼아 공전의 히트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의 시가 1920년대 문단을 지배했던 왜색을 깨부수고 현대적인 작풍을 시도했다는 점을 더 높게 평가한다. 정지용이 한국 현대 시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이유다. 이번주에는 시인 정지용을 감수성 풍부한 소년에서 문학청년으로 키워낸 곳. 그의 머리와 가슴속에 시상(詩想)의 씨를 뿌려 발아시킨 고향, 충청북도 옥천을 찾아봤다.



◇정지용문학관=지난 7월17일자 각 신문의 부고란에는 '정지용(1902~1950) 시인의 막내딸 구원씨가 16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담도암으로 투병하던 중 향년 8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정지용은 부인 송재숙(1971년 사망)과의 사이에 3남 1녀를 뒀는데 정구원은 그중 막내딸이었다. 정지용의 혈육 중 장남 구관씨(2004년 작고)와 막내딸 구원씨는 남한에 살고 있었는데 구관씨에 이어 딸마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구원씨가 생전 즐겨 찾던 정지용문학관은 1996년 문을 열었다. 문학관에는 그의 문학을 보듬을 수 있도록 문학전시실과 영상실·문학교실 등이 마련돼 있다. 전시실은 정지용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과 문학사의 전개 속에서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도록 연표와 전시물 등을 비치해 이해를 돕고 있다.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56, (043)0730-3408, www.jiyong.or.kr

◇부소담악(芙沼潭岳)='부소담악'은 군북면 추소리 부소무니마을 앞 호반에 700m가량 펼쳐진 암봉으로 옥천을 대표하는 '추소8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부소무니마을 앞 물 위에 떠 있는 산이라는 의미의 부소담악은 우암 송시열이 소금강이라 예찬했을 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2008년 국토해양부가 전국의 하천·호수·계곡·폭포 등 한국을 대표할 만한 아름다운 하천 100곳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부소산은 해발고도 120m의 최고봉을 시작으로 고도 90m의 봉우리를 양쪽으로 거느린 총길이 약 1.2㎞의 산이다. 물 위로 솟은 기암절벽을 따라가면 병풍처럼 펼쳐지는 부소담악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 추소정에 오르면 파노라마처럼 멋진 풍광의 일부가 눈에 들어온다.

부소무니마을로 들어가기 전 길가에서 보면 웅장한 자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거리가 멀어 자세히 보이지는 않는다. 가까이 접근해서 보려 해도 전망데크가 부소담악 위에 조성돼 있어 정작 암봉들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없는 게 흠이다. 옥천군이 부소담악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맞은 편에 새로 짓거나 배를 타고 강을 따라 조망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한다면 전국구급의 관광명소로 거듭날 수도 있는 천혜의 자원이다.

◇육영수 생가=옥천 구읍의 한옥 '교동집'은 육영수 여사가 나고 자란 집이다. 허물어진 채 생가 터만 남았다가 복원을 마치고 2011년부터 일반에게 공개됐다. 이 집은 조선 초기 1600년대 김 정승이 처음 지어 살았고 이후 송 정승, 민 정승 등 삼정승이 살았던 집으로 알려져 있다. 삼 정승이 살았다 해 '삼정승집'이라 불렸던 이 집은 육 여사가 태어나기 전인 1918년 부친 육종관이 민 정승의 자손 민영기에게 사들여 고쳐 지으면서 조선 후기 충청도 반가의 전형으로 탈바꿈했다. 교동집의 터는 풍수지리학상 명당으로 알려졌으며 집의 후원과 과수원을 합치면 2만6,400㎡에 대지 1만㎡ 규모다.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119, (043)730-3417

/글·사진(옥천)=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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