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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의 남성학] 공녀(貢女)와 처녀성

삼국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중국에 보내진 공녀(貢女)는 기록에 나타난 것만 316명에 달하는데 이들은 주로 궁인이나 고관대작의 첩이 되었다. 그러나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산 여인은 명나라 황제 영락제의 후궁이었던 청주 한씨였다. 그녀는 영락제가 조선으로 사신을 보낼 때마다 한씨의 친정집에 진귀한 선물을 보내고 총명하고 영리하다는 찬사를 태종에게 전할 정도였다. 한씨는 뛰어난 미모와 인품으로 중국과 조선간의 문제도 슬기롭게 해결했는데 바로 중국에 끌려 온 황씨여인의 숫처녀 사건이었다. 황씨가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에 분개한 영락제가 태종에게 항의문서를 보내려는 심각한 외교문제가 발생했다. 성벽에 생리혈이 묻은 속옷이나 생리대, 성행위 때 여성의 아랫도리에 깔라 두었던 설건(褻巾)만 걸어도 적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던 중국인에게 처녀성은 신성한 가치였다. 전쟁이 나면 처녀 만 명이 생리혈을 묻혀 만점매화장(萬點梅花帳)이란 붉은 기를 만들 정도였다. 따라서 더럽혀진 처자를 공녀로 보낸 행위는 황제권위를 능멸하는 것이었다. 황씨는 영락제 침소에 들기 전 처녀성 감별을 받았는데 앵무새 피가 팔뚝에 묻지 않아 의심을 받았고 결국 중국에 오기 전 이웃에 사는 노비와 간통했다고 토설했다. 황제의 분노를 접한 한씨는 고국에 해가 끼칠 것을 염려해 황씨는 사가(私家)의 여인이었는데 우리 임금이 어떻게 처녀인지 아닌지를 알겠습니까라며 호소하여 해결했다. 하지만 황제의 깊은 총애를 받았기에 영락제가 죽자 순장을 당하고 말았다. 주술적 영향은 악귀를 물리친다는 붉은 색에서 비롯되었는데 신성한 처녀들의 생리혈이 가장 영험한 것으로 믿었다. 또 쾌감으로 처음 흘리는 애액을 회춘의 묘약으로 여겼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붉은 색을 좋아하며 첫날밤 신부의 처녀막이 파열되면서 선혈이 묻은 이불을 자랑스레 집 밖에 내거는 풍속도 있었다. 한편 처녀성 회춘론의 전통은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으니 바로 원조 교제이다. 소녀와 동침하면 회춘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이 어린 소녀들을 유린하고 있는데 의학적으로 전혀 근거 없다. 오히려 나이 어린 소녀와의 동침은 과도한 흥분을 야기 시켜 자칫 복상사와 같은 불행을 자초할 수 있다. 성기능이 부실할수록 원조교제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자신의 부실한 성적기능을 경험이 부족한 파트너에게 들킬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기능에 문제가 있다면 속히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첨단 현대의학은 누구나 강한 남성으로 거듭나게 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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