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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덕우 전 총리 특별강연/「세계화시대의 경제운영」

◎“힘의 통치가 경제위기 불렀다”/한은 독립은 필수… 정부요구도 “노” 할 수 있어야/거시정책 대증요법 탈피 일관된 「틀」 필요/정경유착 고리 끊어 기업의욕 높이고/기술개발·해외시장개척 등 정부지원도/중기 첨단산업 부품업체화 등 분업 시급세계경제연구원(이사장 사공일)은 25일 남덕우 전 국무총리를 초청, 서울 롯데호텔 에머랄드홀에서 「세계화시대의 경제운영」에 관한 특별강연회를 주최했다. 다음은 남전총리의 강연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총체적 위기사태를 맞이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결국 민주화와 개방화를 달성하기 위한 진통으로 집약될 수 있으며 최근의 사태는 바로 민주화·개방화에 대응하는 우리의 실상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실상은 어떠한가. 지난날 반정부수단으로 민주주의를 외쳤던 정치지도자들은 민주주의를 이해하지도 실천하지도 못하고 있다. 문민정부도 사정, 세무사찰, 실명제 등을 정치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이전과 다를바 없는 힘의 통치를 실시하고 있다. ○사라진 개혁의지 여야는 너나 할 것 없이 보수와 개혁이 혼재된 채 정책이 아닌 세력싸움을 벌이느라 국사를 돌볼 시간조차 없다. 대표적 한국병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보다 생산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기개혁에 힘쓰기보다는 당리당략에만 마음을 쏟고 있는 것이다. 안보에 있어서는 지도자가 군에 사명감이나 자유·민주 수호신념을 부여하지 못함으로써 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국방과 경제발전에 대한 군의 자부심이 두 전직대통령으로 인해 상실됐는데도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질 지도자가 없는 것이다. 일부 공무원들에게 부정비리는 습관화된 상태이며 일에 대한 열의도 없다. 공무원들은 민주화와 개방화에 대한 적응방법도 모르는 상황에서 믿고 따를만한 지도자마저 없어 일할 맛이 안난다. 민주주의를 지탱해야 할 국민들사이에선 집단적 이기주의와 떼쓰기가 일반화되어 있다. 그나마 언론은 자율의 힘을 쌓아가며 이전보다는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나 흥미위주의 보도로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상이 「민주화」라는 역사적 과제에 대응하는 우리의 실상이다. 결국 우리 사회에는 중심이 없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보수중산층을 정말로 대변·대표할 정당도 없다. 구심점도 없고 선배가 후진을 지도하는 권위도 없어진 상황에서 우리사회에는 제각기 흩어져 상호비방을 일삼는 사태가 일고 있는 것이다. 이를 민주화 달성을 위한 과도현상이자 진통의 과정이라고 자위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 국면에서 빨리 탈출할 수 있느냐이다. 이에 대한 답은 본인이 언급할 일은 아니나 결국 정치적 리더십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방화에 관해서는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개방으로 인한 국제수지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구조를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경제의 구조적 약점인 4고(고임금·고금리·고지가·고물류비용) 3저(저효율·저기술·저부가가치)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국제수지 사상 최악 이같은 4고3저를 유발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경제에 바탕이 있어야 한다. 즉 정부의 거시 및 산업정책, 그외 경제정책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정부의 정책은 최근 단행한 금융개혁을 비롯해 불안정하다. 금융개혁은 향후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결과가 어떻게 될지 가늠할 수 없다. 사회간접시설 투자도 진도가 상당히 늦은 실정이며 불급한 재정지출을 일삼는 것도 문제이다. 가령 중앙박물관 철거에 돈을 쏟아붓는 것보다는 서울시에 도로 하나라도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기술개발도 아직 정착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경쟁력을 위해 경제의 바탕이 마련돼야 한다면 혁신을 위해선 기업의 창조적 활동이 유도돼야 한다. 혁신을 위해선 기업의 의욕과 창발력, 선투자, 기술이 필요한데 불행히도 우리의 경제환경은 혁신활동에 친화적이지 못하다. 이제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기업의 과거지사를 매듭지어야 할 때이다. 제도적으로 과거를 청산, 새출발을 해야 사람들은 안심하고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급여 및 소비수준이 우리 경제실적으로는 감당못할 만큼 치솟은 것도 국제수지 악화의 요인이다. 일반적으로 명목소득 수준이 생산을 웃돌면 물가상승이나 국제수지 악화를 불러 일으키는데 요즘같은 개방화시대엔 국제수지 효과가 크게 나타나게 마련이다. 정부가 너무 사태를 낙관하고 마치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양 허풍을 떤 것도 한몫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산업구조도 국제수지 악화의 주요 요인이다. 우리는 부품조달에서 많은 부분을 일본에 의지하고 있어 수입이 수출과 같이 증가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중소기업을 부품생산업체로 재편했어야 하는데 80년대에 이 작업이 체계적이고 일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중소기업이 쓰러져 가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재건을 위해선 무엇보다 중소기업 재편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소기업을 첨단산업의 부품생산업체로 재편함으로써 우리가 세계적인 분업편성 과정에 끼어들 수 있어야 한다. 예전에 섬유와 신발산업 등을 일으킨 우리 중소기업의 기량과 잠재력을 고려한다면 가능성은 있다. ○경제성장률 낮춰야 그렇다면 국제수지 개선을 위한 해결방안은 무엇인가. 우선 우리 경제의 성장률을 낮춰야 한다. 우리는 이 시점을 지나친 급여나 소비를 반성하고 자세를 가다듬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 정부가 기업의 의욕을 북돋우고 창발력과 선투자, 기술력과 시장개척을 지원함으로써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 물론 세계무역기구(WTO)를 비롯한 국제규범의 제재를 받을 우려가 있으나 간접적 지원은 가능하다. 한보사태로 노출된 금융산업의 약점을 시정하기 위한 금융개혁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마련하고 은행의 재무제표를 정상화해야 한다. 이미 해외에서 한국신임도가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지만 은행감독원이 나서서 한보사태의 손실을 과장없이 파악·분석하고 문제를 차분히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같은 우리의 경제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선 경제운영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우선 앞으로는 기존의 정부 역할에 여러 제약이 가해질 것이다. 정보화·민주화·세계화가 진행되고 사회가 다원화됨에 따라 정부능력에 대한 도전은 거세질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토론을 거쳐 국민에게 알리고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이번 노동법 개정 문제도 이러한 토의과정을 거치지 않은데서 비롯된 것이다. ○규제·간섭 최소화로 또 정부는 명백한 원칙과 기준하에 기존 규제를 해제해야 한다. 본인이 제시하는 규제의 기준은 ▲규제가 시장메커니즘에 의한 경쟁을 제한하는 것인가 ▲시장진화적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인가 ▲규제가 부정부패를 유발할 소지가 있는가 ▲소수의 잘못을 다스리기 위해 선량한 대다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닌가 ▲규제에 실효성이 있는가이다. 한편 정부가 할일은 앞으로 더 많아지고 어려워진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간섭이나 규제를 떨구고 거시경제의 건전한 테두리를 유지하고 ▲정부사업을 제대로 추진하며 ▲경제발전을 막는 정치·사회적 장애를 없애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장관들이 단순한 행정관료에 머물지 말고 늘 사회이익집단, 언론, 국회와 상대하여 정부의 정책의지를 관철시키는 정치성있는 행정관료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특히 거시정책면에서 우리나라는 과거 특수한 통치구조상 종합성이나 일관성 없는 대증요법 위주의 정책에 머물러있다. 거시경제의 틀이 있다면 물가상승을 비롯, 경제문제의 많은 부분은 해결되거나 적어도 약화될 것임에도 정부는 대통령지시에 따라 「뭔가」를 하기 위해 단편적 대증요법만을 사용하고 있다. 결국 과거 30년간 경제의 틀은 점점 사라지고 대증요법만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속에서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우리도 거시정책 운영을 선진화해야 한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거시적인 틀을 움켜쥘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그런데 거시정책의 틀이란 통화신용정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결국 독립적인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대두시킨다. 가령 독일의 모범적 경제는 연방준비은행으로 인해 가능하다. 독일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중앙은행 강화와 법적 독립은 세계적 조류이다. 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도 유럽 중앙은행들의 독립성 기준충족을 내걸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지난 20년간의 인플레가 통화정책이 허술한데 기인한 것이며 정부협력을 거부할 수 있는 중앙은행이 있는 국가에선 인플레율이 낮다는 통계가 나오는 등 통화가치 안정을 위한 중앙은행의 중요성이 인식된데 따른 것이다. ○지도자 선택이 중요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은행 발족 이후 임기를 채운 총재는 4명뿐이라는 사실이 일관된 통화정책이 시행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건전한 경제성장은 어렵다고 확신한다. 또 이를 위해 한국은행장은 대법원장 정도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민주화시대에는 이익집단의 반발과 야당의 전략, 언론의 양비론적 비판으로 인해 원활한 정책추진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강력한 리더십이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 등 세계 여러 지도자의 경우를 통해 알 수 있다. 특히 우리가 일본 지도자를 통해 배울점이 많다고 생각되는 것은 일본의 전후 혼란이 현재 우리의 현실보다 훨씬 더했기 때문이다. 당시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관철한 요시다가 현재 일본에서 전후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되는 것처럼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신념과 열의다. 불행히도 현재 우리 사회에는 정치적 지도력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다. 노동법 문제를 비롯해 정치지도자는 원칙없는 타결을 지양,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그 원칙을 관철시킬 열의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안은 기본적인 문제는 대통령이라는 사회 구심점이 흔들림으로써 민심이 갈래갈래 흩어져버렸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이 대통령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나 대통령은 다시 국민의 구심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 국민의 관심은 올해 대선에 집중돼 있다. 우리가 이 위기를 극복할지 여부는 누구를 지도자로 맞느냐에 달려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을 살펴보면 ▲나라를 위한 자신의 역할 인식과 이에 대한 정열 ▲문제를 전체로서 파악하고 중요성을 가릴 식견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능력 ▲통솔능력 ▲신념이 바탕이 된 국민 설득 능력 ▲결단능력 ▲청렴과 덕의 7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자질을 고루 갖추고 큰일을 해낼 지도자를 만나기는 어려우나 우리 국민은 이러한 조건들을 염두에 두고 대선을 치러야 할 것이다.<정리=신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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