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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칼럼] 정치디자이너를 기대하며

경영학의 빼놓을 수 없는 참고서 ‘미래를 경영하라’의 저자이면서 ‘경영학의 구루(guru)’라고 불리는 톰 피터스는 “세계화는 축복인 동시에 혼란을 줄 것이며 미래에는 모든 것의 본질 자체가 뒤엉킨 혼돈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는 특히 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의 대변화가 기존의 세계를 무너뜨리고 어떤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러한 혼돈이 결국 파괴를 부르기는 하겠지만 그 파괴는 새로운 생성의 동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세계는 하나의 정형화된 이론이나 법칙 없이 모두가 ‘생존’을 위한 탈출구를 찾기 위해 갈팡질팡하고 있는 듯하다. 15년 뒤에는 현재 화이트칼라 업무의 95%가 바뀔 것이라는 예견도 그리 극단적으로만 들리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를 대비할 것인가. 많은 학자들이 이와 유사한 진단을 하면서 공통적으로 내놓는 ‘혼돈으로부터의 탈출’에 대한 해결책은 ‘재창조’이다. 그리고 이러한 재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 중에 ‘디자인’을 그 으뜸으로 꼽고 있다. 왜냐하면 디자인의 개념이 더 이상 ‘외형을 꾸미는 일’의 ‘장식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사용자들의 ‘감성적 경험의 총합을 극대화시키는 활동’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구매한다는 것이 ‘디자인’의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것이다. 제품 구입부터 사용 단계,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고객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디자인이 그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로 떠올랐다는 얘기다. 실제로 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물질적으로 풍요하게 만들었고 이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물질에 대한 욕구가 오히려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 대신 인간의 욕구는 좀더 정신적이고 감성적인 쪽으로 발전하면서 좌뇌보다 우뇌로 판단하는 직감적인 제품의 브랜드와 그에 따른 인상 등이 훨씬 더 중요하게 됐다. 그래서 디자인은 이제 제품ㆍ회사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그 미래까지도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부상하게 됐다. 게다가 이제 디자인은 제품의 영역을 훨씬 뛰어넘어 생활 전반의 설계, 나아가서는 국가 정책을 입안하는 데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디자인은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의 문제가 아니라 누적된 경험을 통해 깊숙이 내재해 있는 인간의 잠재의식을 들춰내 그야말로 심금을 울릴 때만 성공할 수 있다. 어찌 보면 현재의 ‘디자인’이란 깊숙이 숨겨져 있는 인간의 무의식을 표현하는 새로운 ‘변혁’의 개념에 근거해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변혁이란 ‘남이 생각 못 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더 깊이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러한 ‘변혁의 디자인’을 고안한 사람들은 역사적으로도 무수히 많다. 화가ㆍ발명가ㆍ과학자로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역대 최고의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신념으로 전쟁을 불사하고 마침내 노예해방을 이끈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흑인에 대한 차별 대우에 맞서 싸우다 오랜 기간 옥고를 치른 후 대통령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면서 자기를 억압하던 백인들을 오히려 용서하고 화해와 상생의 새로운 국가를 만든 넬슨 만델라 역시 ‘명 정치 디자이너’였다. 조선시대 의견을 달리하는 신하들을 아우르고 오히려 중지를 모아 우리나라 최고의 발명품 ‘한글’을 창시하고 온갖 과학기기ㆍ무기 등을 만들어 나라의 안정을 지속시킨 세종대왕 또한 우리 역대 최고의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명품을 디자인하는 것은 결코 한 사람의 반짝 아이디어로 이뤄지지 않는다. 미국의 비즈니스위크지가 2006년도 디자인 업계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한 IDEO라는 회사는 지난 12년 동안 ‘산업디자인 대상’을 한번도 놓치지 않은 그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디자인 회사이다. 그곳에서 소위 ‘브레인 스톰(brain storm)’을 할 때는 다양한 전공자들이 참석하는데 미대 출신은 한두 명 정도이고 공학ㆍ의학ㆍ경영학, 심지어 생물학을 전공한 사람까지 한데 모여 다양한 의견을 무수히 쏟아놓은 다음 그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여러 제약 조건들을 고려한 후 적절히 조립해 최고의 디자인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요즘 무수히 쏟아지는 정책들도 이처럼 ‘디자인’하듯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부동산정책을 만들 때 오히려 관련 공무원들은 최소한으로 참여하고 관련 소개업소, 지역별 거주자, 중년과 노년층을 골고루 섞어 장기간 이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논의를 수렴하는 과정에서도 이들을 같이 참여시킨다면 아마도 동일한 시행착오는 거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이제 대선 정치판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무수한 대선 공약들이 한두 사람의 반짝 아이디어로 만들어지기보다는 실제 정책의 영향을 받을 다양한 ‘주인공’들이 함께 참여해 만들어진다면 모두가 공감하고 피부로 느끼는 ‘생생한’ 정책들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한국 최고의 ‘디자이너’가 새롭게 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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