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시간) 이란 핵협상이 전격 타결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중동 국가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원유 매장량 2위인 이란이 경제제재 해제로 내년 말쯤 국제 시장에 본격적으로 복귀할 경우 국제유가 하락 압력, 미국의 셰일혁명 둔화 등 후폭풍이 몰아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동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 불가 입장을 고수할 경우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간 불협화음이 증폭되면서 연합전선에 금이 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다만 이란의 원유 수출 정상화가 빨라야 내년 초에나 시작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기적으로 국제유가 추락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직 멀고도 험한' 이란의 원유 수출=비잔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최근 "국제사회의 제재가 해제되면 수개월 안에 원유 수출량이 하루 100만배럴 더 늘어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란 석유 수출량은 2011년 하루 평균 215만배럴에서 2012년 경제제재 조치 이후 2013년 110만배럴로 급감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제재 조치가 풀린 지 6개월 뒤에도 이란의 석유 수출량은 하루 20만~60만배럴 증가하는 데 그칠 것"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이다. 그동안 서방 제재로 시설이 노후화해 제재에서 풀리더라도 이란의 석유 생산량이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려면 1년 이상 걸린다는 것이다. 레이먼드 제임스 에너지 산업 애널리스트는 "기술적인 문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며 "한번 폐쇄된 유정은 가동을 재개해도 이전 생산량이 회복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란의 석유 생산은 투자 부족에 시달리면서 제재 이전인 2011년에도 하루 생산량이 350만배럴로 2007년 말의 400만배럴보다 오히려 줄었다. 제이슨 보르도프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 소장은 "이란의 석유 시장 복귀는 빨라도 내년 초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제재 조치가 언제 풀릴지가 아직 불투명하다. 이번에 양측은 이란이 핵개발 활동을 중단하되 국제 사회의 제재 조치는 오는 6월 말까지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금융ㆍ석유ㆍ여행 등 이란에 대한 복잡한 제재 조치를 언제, 어떻게 풀지 세부 내용이 빠져 있다는 게 이날 뉴욕타임스(NYT)의 설명이다.
전문 분석기관인 에너지 애스펙츠는 "6월 말 협상이 최종 타결되더라도 제재 해제는 그로부터 최소한 6개월에서 1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의 석유 수출량이 제재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내년 말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이처럼 당분간 이란산 원유가 쏟아져나올 확률이 거의 없는 만큼 유가 하락 압력도 제한적이라는 전망이 많다. 실제 이란 핵협상 타결 소식에 5월 인도분 브렌트유 가격은 장중 5% 이상 떨어졌다가 공급 과잉 우려가 줄면서 3.5% 하락으로 낙폭을 줄이며 마감했다.
◇OPEC 카르텔에 균열 오나=하지만 이란이 석유 시장에 복귀하면 2~3년 후부터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막대한 파장이 일 수 있다. 이란의 원유 매장량은 세계 4위에 이른다. 나엠 아슬람 아바트레이드 수석 애널리스트는 "이란산 원유 100만배럴이 추가되면 전세계 공급 과잉 물량은 하루 200만배럴에 달한다"며 "국제유가가 매우 쉽게 30달러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소한 유가 100달러 시대는 다시 오기 힘들다는 분석이 많다. 최근 저유가로 신음하는 미 셰일 업체도 더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미 에너지 정크본드 가격이 급락하고 투자가들이 속속 이탈하면서 소형 셰일 원유업체의 파산 보호 신청이 잇따르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원유 시추기 수는 갈수록 감소하는 추세다.
특히 이란의 석유 수출 정상화가 OPEC 카르텔의 붕괴를 초래할지가 관심사다. 일각에서는 6월 열리는 OPEC 정기총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장점유율 유지를 위해 증산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반면 한편에서는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감산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해결책이 마땅치 않은 만큼 OPEC 내의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이란의 석유 수출이 증가하는데도 OPEC 전체의 수출 물량을 유지할 경우 다른 중동 국가의 할당 쿼터는 줄게 된다. 반면 국가별 쿼터를 유지하기 위해 OPEC 전체 차원에서 증산을 결정했다가는 유가가 더 폭락할 수도 있다. 도미니크 치리첼라 에너지 매니지먼트 인스티튜트 선임 파트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또다시 회원국의 감산 요구를 억누를 경우 연합전선에 구멍이 나면서 각자의 길을 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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