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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줘서 너무 고마워요.”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저녁 서울 강북구 번동 정철호(44)씨 집은 여섯 공주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어린이날이라고 특별히 선물하나 제대로 사준 적이 없지만 6자매가 모두 밝고 건강하게 자라 정씨 부부는 고마울 따름이다. 가족 수가 많아 차 한대로 움직이기가 여의치 않지만 그래도 이번 어린이 날에는 가족 모두 가까운 놀이공원에라도 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다른 가정에 비해 자녀가 조금 많은 것 같다는 질문에 아내 윤미란(37)씨는 “그냥 생겼으니까 낳았다”며 쑥스럽게 답했다. 사실 남편이 장남이긴 하지만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부담은 전혀 없었다고. 흔히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라고 하지만 정씨부부에게 이들 여섯자매는 그야말로 둘도 없이 소중한 보물들이다.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맏딸 상희(17)는 살림 밑천이자 ‘군기반장’이다. 쉬는 날에는 어김없이 빨래며 청소며 허드렛 일을 도맡아 하고 어린 동생들까지 잘 돌봐 준다. 미용쪽에 관심이 많아 올 가을에는 이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인근 고등학교로 전학 갈 생각이다. 둘째 은희(15)도 집안 일을 잘 돕지만 그림 그리기와 글짓기에 더 열심이다. 혼자서 조용히 사색하거나 책 읽기를 좋아한다. 셋째 숙희(9)는 색종이 접기 등 만들기를 좋아한다. 넷째 윤희(8)는 집안의 ‘말광량이’. 성질이 급해 자주 말썽을 피워 혼나기도 하지만 성격이 좋아 금방 풀리곤 한다. 다섯째와 막내인 영희(3)와 성희(2)는 아직 어려서 그저 방글방글 웃기만 한다. 아이들이 많아 전세집도 제대로 얻을 수 없었던 정씨부부는 몇 년전에 지금의 25평짜리 연립주택을 어렵게 구입했다. “집 없는 설움은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는 정씨는 “막상 집을 얻고나니 서울시나 강북구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해 못내 속이 상한다”고 말했다. 좋은 옷이나 외식은 커녕 남들 다가는 학원도 보내지 못하는 형편인데 집이 있다는 이유로 그 많다는 복지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고물상을 하는 남편이 운행하는 트럭도 자산계층으로 분류되는 또 다른 이유다. “월 소득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들쭉날쭉해서 어떤 때는 아이들 끼니조차 걱정해야 할 때도 많아요. 아이들이 너무 잘 먹어서 그렇기도 하겠죠 ?” 어린이날을 맞아 윤씨의 유일한 소망은 ‘아이들이 잘 자라 자기들이 원하는 일을 하나씩 이루면서 사는 일’이다. 그렇게까지 되기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래도 이젠 매년 이집 저집 이사를 안해서 정말 행복해요. 그 전에는 아이들이 많다고 방을 안 내주는 집주인들도 많았는데…앞으로도 아이가 생기면 얼마든지 또 낳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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