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미국 농무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은 27억달러(약 2조9,000억원)로 전체 예산의 약 1.9%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각각 나눠져 있는 농림수산식품부(2,912억원)와 농촌진흥청(5,333억원)을 더해도 같은 해 기준으로 8,245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의 R&D 예산이 우리보다 약 3.5배가량 많은 셈이다. 이는 정부 부문만 놓고 봤을 때이지 실상은 더 큰 차이가 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는 농식품 분야의 민간 R&D가 사실상 미미한 데 비해 미국은 민간의 투자 규모가 더 크기 때문이다.
산업 발전에 R&D가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아직 산업화 단계에 제대로 진입하지 못한 국내 농식품업의 산업화에는 R&D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농식품 R&D는 정부에만 의존하는 형태로 구조가 왜곡돼 있다. 정부의 R&D 예산과 인력양성도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민간 R&D에 인센티브 줘야=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농식품 R&D 수행주체를 분류해보면 전체의 57.6%를 국공립 연구소에서 담당하고 있다. 출연연구기관(6.7%)까지 더하면 64.3%가 사실상 정부에서 하는 셈이다. 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민간 부문의 비율은 6.8%에 불과하다. 그나마 대학이 20.4%로 더 많은 상황이다.
수행 주체를 놓고 봤을 때 그렇지 실제 참여율은 더 떨어진다. 국가 전체 R&D 예산 대비 민간기업의 매칭펀드 비율은 6.1%지만 농림수산식품 분야 민간기업의 매칭펀드 비율은 1.5%로 매우 저조하다. 2010년 현재 기업이 투자하는 농식품 분야 R&D 매칭펀드 규모는 114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R&D 투자가 산업경쟁력의 필수요소임에도 민간투자가 적은 것은 각종 규제가 많은데다 농수산업의 특성상 리스크가 높기 때문이다. 당장 농업회사에 비농업인 출자한도가 90%로 제한돼 있다. 10%는 무조건 농민이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자본금 80억원 이상의 경우 금액한도로 8억원만 농민이 출자를 하면 되지만 농업회사를 세워 이윤추구를 하려는 일반 기업들 입장에서는 부담이 있는 편이다. 특히 일부 축산업과 어패류 양식에는 대기업의 참여가 아예 금지돼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국공립연구소와 대학 위주로 돼 있는 국가 R&D 사업의 연구수행 주체를 민간기업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사업구성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민간기업의 농식품 분야 R&D를 유도하기 위해 추가적인 세제혜택 같은 인센티브 방안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민간 부문의 R&D 투자확대가 많이 늘어나야 농식품 분야 기술확보 및 산업화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며 "민간 R&D를 유도할 수 있는 세제혜택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R&D 연구인력 확보하고 투자 분야도 다양화해야=R&D에는 우수 인력확보가 관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농식품 분야 인력이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농림수산식품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2010년 현재 농림수산학을 전공한 연구원 수는 9,202명 수준이다. 2000년 이후 6,000~7,000명 수준을 오르내리다가 2009년(8,713명) 이후 조금씩 늘고 있지만 여전히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이 때문에 체계적인 연구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향후 농식품 산업의 수출과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큰 만큼 농식품 분야 인력양성을 서둘러야 한다는 얘기다.
R&D 투자 분야를 더 다양화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지금은 농산물 생산과 가공에 치우쳐져 있는 예산배분을 유통과 바이오, 문화ㆍ관광과 연계할 수 있는 분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미래 성장동력 분야는 향후 농림수산식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수요 중심형 R&D 체계 필요=네덜란드의 와게닝겐 UR(University & Research Center)는 세계적인 농식품 연구기관이다. 농과대학과 연구기관 기능을 합쳤다. 와게닝겐 UR의 최대 강점은 바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연구 위주로 돼 있다는 점이다. 이는 특정기술을 필요로 하는 농기업의 연구비용의 일부를 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수요 중심형의 R&D 체계가 구축돼 있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유럽에 비해 농업의 발전 정도가 낮고 농업회사와 농민의 수준이 이런 정도까지 올라와 있지 않아서이긴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우리도 수요 중심형의 R&D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농산물 투자에 특화돼 있는 네덜란드의 라보뱅크는 동남아 화훼시장 진출을 위한 리포트 같은 수출농가를 위해 보고서를 낸다는 게 농식품부 관계자의 말이다. 우리나라 농협은 아직은 이 정도 수준에는 오르지 못한 게 현실이다.
IT·환경기술과 연계… 먹거리 부가가치 높여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