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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로 일군 도전·개척 60년] <4>전자산업의 샛별, 빛을 말하다

"우리 손으로 가전제품 만들어보자" 국내 첫 전자공업사 '금성' 탄생<br>59년 라디오 이어 냉장고·TV등 잇단 생산<br>67년 정유사업 진출 여수産團 밑그림 그려




“우리가 그거 맨들면 안되는 기요? 기술이야 배워오면 되고 안되면 외국 기술자 델고 오면 되는 거 아니오.” 지난 57년 연초 락희화학 사무실. 윤욱현 당시 기획실장이 하이파이 레코드에서 흐르는 음악에 잠을 설쳤다는 얘기를 듣던 연암 구인회 사장이 느닷없이 또 다른 도발을 했다. 윤 실장은 물론 한자리에 있던 여타 임원들도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연암이 누군가. 당황하는 임원들의 표정을 ‘내몰라라’ 하며 사업검토를 지시했다. 기실 연암의 뇌리에는 예전 일본 통상성이 발표한 통상백서에서 석유화학공업과 전자공업이 유망산업이라는 내용이 떠올랐다. 이후 한켠에서는 기계설비 도입을 위해 예산을 확보하고 다른 한켠에서는 독일인 기술자 헨케(H.W.Henke)를 생산책임자로 영입했다. 헨케는 LG그룹 최초의 외국인 직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시작한 신규 사업 프로젝트는 이듬해인 58년 10월1일 금성사라는 국내 최초의 전자공업회사 설립으로 이어졌다. 금성은 화려하고 신비할 뿐만 아니라 무궁한 수명을 상징한다는 의미에서 전자제품 이미지에 딱 어울렸다. 첫 작품은 라디오. 태풍 ‘사라호’가 남해안을 할퀴고 지나간 59년 11월12일 부산 연지동 공장 직원들은 환호를 질렀다. 금성사 최초의 라디오인 ‘A-501’이 탄생한 것. 제품은 만들었지만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는 미군 PX 유출상품과 밀수품이 판을 치던 때라 국산 라디오의 품질을 믿고 선뜻 사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게다가 한 사람이 하루 종일 매달려 라디오 하나를 만드는 상황에서 가격을 낮추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연암의 뚝심은 이런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금성사 라디오는 이후 ‘A-401’ ‘B-401’ 등 7개 모델로 이어졌으며 선풍기ㆍ전화기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매경한고발청향(梅經寒苦發淸香)이란 말도 있지 않소! 지금 우리는 전자공업이라는 길 없는 밀림의 개척자인 기라. 일년 더 해보고 안된다 싶으면 그때 가서 내 손으로 문을 닫을 기요. 힘을 모아 일해주소.” 얼마나 힘겨웠으면 임직원들은 연암을 볼 때마다 어려움을 호소했는데 이때 연암이 꾸짖으며 했던 말이라고 한다. 62년 10월. 금성사에 낭보가 전해졌다. 미국 사이렌버그와 2년 동안 50만달러어치의 판매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연암은 “50만달러면 괜찮은 편이제? 소니ㆍ내셔널하고 당당히 경쟁하는 기다”고 말했다. 이미 연암의 가슴에는 일본 기업과 견줘 손색없는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가 세워져 있었다. 냉장고 개발에는 뒷얘기가 풍성하다. 64년 여름 고장난 냉장고로 고민하던 구정회 사장은 아예 냉장고를 만들 생각에 미제 톱날을 잘라 컴프레서의 밸브를 만드는가 하면 버려진 병기들을 녹여 사용하기도 했다. 결국 순수 국내기술로 냉장고를 만들고 에어컨을 만들어냈다. TV사업도 시작됐다. 라디오로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TV 부품의 절반 이상을 국산화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자 흑백TV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일본 히타치로 연수를 떠났던 직원들은 기술연수가 아니라 아예 기술을 몸에 배게 해서 돌아와 68년 8월1일 19인치 1호 모델인 ‘VD-191’을 만들어냈다. “집에서 쉬기도 지루하제.” 65년 정월 초순. 연암은 겨우 사흘 쉰 구평회 전무와 한성갑 기획부장을 불러 새로운 사업거리를 내놓았다. 정유사업 진출 계획. 정부가 차관을 들여와 지원하는 것이어서 각 기업들의 샅바 싸움은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기초닦기를 시작한 지 1년여가 지난 66년 11월17일 당시 장기영 경제기획원 장관은 여수 제2 정유공장의 실수요자로 락희화학 계열의 호남정유(현 GS칼텍스)를 결정한다고 발표했다. 이듬해 2월20일 호남정유의 여수공장 기공식이 열린 여수 월내국민학교. 국내 기업 최초로 해외자본(칼텍스)과 합작한 호남정유의 시공발파 단추를 누르는 연암의 손은 이미 40년 뒤 여수산업단지를 그리고 있는 듯했다. 연암 구인회의 비즈니스에 대한 열성과 집념이 끝없이 이어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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