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동안 은행원으로 일해온 이창기(47)씨는 설을 앞두고 고민이 많다. 은행에서 희망퇴직을 받는데 조건이 워낙 좋아서다. 하지만 막상 신청하려니 두렵다. 집 장만에 아이들 뒷바라지에 들인 돈이 많았다. 국민연금을 받으려면 18년이나 남았고 개인연금은 들지 않았다. 8년 후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월 100만원에 불과하다. 결국 희망퇴직을 하지 않기로 했다.
# 28년 동안 반월공단에서 일한 박동렬(55)씨. 올해 정년퇴직이지만 걱정이 없다. 자식은 모두 출가했다. 개인ㆍ퇴직연금을 합쳐 200만원을 곧바로 받고 10년 후부터는 국민연금도 나온다. 새 일자리도 있다. 비영리단체(NPO)에서 영세업자 재무상담을 할 예정이다.
대다수에게 은퇴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은퇴에 정면으로 맞서 적극적으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사회생활 초반부터 은퇴에 대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천양지차다. 물론 돈은 행복한 은퇴를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건강과 취미 등 준비할 것이 너무 많다.
60세에 은퇴해 100세까지 산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나 될까. 8시간 자고 3시간 밥 먹고 꼭 할 일에 필요한 2시간을 빼면 총 16만시간의 자유가 주어진다. 은퇴 후 삶은 16만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서 시작해야 한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20일 펴낸 '행복한 100년 플랜'이라는 책을 중심으로 은퇴 후 삶을 제대로 사는 법을 알아봤다.
◇현금흐름에 주목해라=제1의 조건은 역시 돈이다. 은퇴자금은 자산보다 현금흐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과도한 부동산이나 목돈 보유는 피하고 국민ㆍ퇴직ㆍ개인연금 등 '연금 3종 세트'로 포트폴리오를 꾸려야 한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우 소장은 "은퇴 후 소득은 근로기간 소득의 70~80%가 돼야 하는데 현재 연금제도는 45~55%에 불과하다"며 "즉시연금이나 연금보험 등으로 연금자산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행복한 은퇴, 가정 화목에서 출발=삶의 질은 정서적 안정에서 비롯된다. 가정의 화목, 그 중에서도 원만한 부부관계는 행복한 은퇴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이혼건수는 지난 2000년 1,744건에서 2009년 말 6,109건으로 9년 사이 250% 이상 늘었다. 막상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야 할 노년에 부부가 갈라서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은퇴 이후 삶은 '건강'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노화를 결정하는 데는 유전적 요인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접하는 여러 환경적 스트레스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이 말은 곧 평상시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하느냐가 건강관리에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령자가 장수하는 비결은 ▦절제된 식습관(54.5%) ▦낙천적 성격(31.0%) ▦규칙적인 생활(30.9%) 순이다. 박상철 가천의대 교수는 "규칙적으로 근육운동을 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 그리고 여유를 가지며 매사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장수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평생 취미를 통한 시간 활용=우리나라 은퇴자들의 여가활동은 만족스럽지 않은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인구 5명 중 3명이 "여가 및 사회활동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은퇴 후 여가활동을 준비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우 소장은 "취미나 여가활동에 대한 기술과 지식을 은퇴 이전부터 길러놓아야 더 큰 만족감을 누릴 수 있다"며 "특히 외국처럼 여가활동을 위한 비용을 별도로 마련해놓는 것도 계획적인 여가활동에 필요하다"고 전했다.
취미는 계속 바꾸는 것보다 한 가지에 몰입하는 게 낫다. 취미를 자꾸 바꾸다 보면 비용도 많이 들고 만족감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삶의 보람은 사회활동에서=평생을 직장에서 보내온 은퇴자에게 남는 시간은 자유가 아닌 허탈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허탈감을 극복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계속 일하는 것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55~64세 인구 가운데 장래에 근로를 희망하는 경우는 조사 대상자의 73.9%로 나타났다.
결국 은퇴에 대한 이미지부터 바꿔야 한다. 대다수 사람은 은퇴를 곧 휴식의 동의어로 생각하지만 일과 은퇴는 대체가 아닌 동반의 관계가 돼야 한다. 쉽게 말해 '일이냐 은퇴냐'를 고민하는 데서 '일과 함께 하는 은퇴'로 인식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우 소장은 "어느 날 갑자기 일을 완전히 그만두는 식의 은퇴는 당사자에게 적지 않은 고통으로 이어진다"며 "평생 일해온 은퇴자가 받는 심리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갑작스러운 은퇴보다 점진적인 은퇴방법이 장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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