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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공정사회와 경제관료


3월11일 고대해 온 하도급법 개정안이 재적의원 253명 중 한 명의 반대도 없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 정부에서 실패했던 개정을 대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한다고 비난 받았던 현 정부가 해낸 것이다. 이제 중소기업의 기술이나 특허가 침해될 경우 '기술 요구'와 '기술 유용'에 대해 각각 1배수와 3배수의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대기업 수출이 늘어날수록 부품∙소재 대일무역적자가 심화되는 고질적 산업구조는 지난 수십 년간 우리경제의 난제였다. 이번 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일본 핵심부품∙소재 수급에 비상이 걸리면서 정부는 물론 수출대기업도 기술중심 중소기업 육성의 중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지경부·공정위까지 영역 확장 지난 수십 년간 정부는 일본의 부품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력 개발을 위해 수십 조원의 R&D 예산을 지원해 왔고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과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정책 방향이 형식적 구호와 문화조성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구체적인 법과 원칙을 바탕으로 한 시스템이 구축되지 못했다. 기술보호를 명문화한 이번 하도급법 개정이야말로 선진경제한국 실현을 위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나라가 시끄럽다. 3배수 배상제도가 위헌소지가 있다는 한국경제연구소의 연구결과와 동반성장위원회의 초과이익공유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일고 있다. 기술력을 갖춘 중소∙중견기업들은 소송을 통해 떼돈을 벌 생각이 없으며 대기업 초과이익 배분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어렵게 만들어진 규정들이 시장 지배력에 의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온 것을 익히 보아온 터라 이러한 논쟁의 귀결이 걱정스러울 뿐이다. 동반성장위원장은 "이 정부의 동반성장 의지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사퇴를 거론했다. 작년 11월 기업 호민관도 정부가 활동에 제약을 가해 독립성을 훼손시켰다면서 사퇴한 바 있다. 공정한 사회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믿지만 경제관료들이 따라주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호민관제도와 동반성장위원회가 경제관료들의 생색내기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현 정부가 들어 선 후 국민들은 경제관료들의 눈부신 활약과 영역 확장을 봐왔다.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확고한 고환율정책과 금리안정을 위한 열석발언권 행사, 그리고 한국은행의 조사권을 위한 은행법 개정저지 등이 있었다. 늘 그랬듯 대형은행들의 수장이 속속 경제관료출신들로 채워졌고 경제관료들의 행정부 내에서의 영역이 지식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까지 확장됐다. 공정거래확립을 책임지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징벌적 배상제도를 제일 먼저 반대했고 물가관리대책 중심축이 되었다. 마치 모든 경제관련 정부조직이 경제관료 수장을 중심으로 상명하복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하나의 조직으로 개편된 느낌이다.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민영화됐던 한국거래소가 논란 끝에 공공기관으로 재지정되었고 이사장이 전격 사퇴한 후 어렵게 민간인 이사장이 선임된 바 있다. 최근 금융위원회의 고위관계자가 한국거래소의 권위가 약해졌다며 민간인이 이사장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경제관료들이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지만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 국익을 위한 최선일까. 다양한 의견·비판 귀 기울여야 '경제관료'와 '非 경제관료'로 이분화돼서는 안된다. 국정운영 후반기에 올 수 있는 레임덕 현상을 불식시킬 수 있도록 정부 부처가 협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고 있는다는 믿음도 줄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은 물론 고위경제관료들도 소리 없는 비판과 저항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초과이익공유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해외시찰 때마다 큰 선물을 주고 왔던 역대 대통령과 달리 큰 선물보따리를 들고 오는 이 대통령의 성과들이 묻혀버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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