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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소평 사망 이후(사설)
입력1997-02-21 00:00:00
수정
1997.02.21 00:00:00
19일밤 별세한 중국의 지도자 등소평의 최대 업적은 뭐니뭐니해도 12억명에 이르는 중국인민들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다. 아직 중국대륙이 완전하게 빈곤에서 벗어났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인구의 대다수가 등따습고 배부른 「온포시대」를 구가하고 있고 나머지도 그런 기대에 충만케 한 것은 정치지도력이 보여줄 수 있는 것 중 최상의 것이다.그의 지도력은 철저한 실사구시 정신에 있었다. 그같은 정신은 「쥐를 잡는데 흰고양이 검은 고양이가 따로 없다」는 이른바 흑묘백묘론과, 「혁명은 물질적 이익의 토대위에서 태어난다」는 78년 11기3중전회 발언에 잘 드러나 있다. 모택동과 함께 중국공산당혁명을 이끌었던 그였지만 혁명성공의 요인을 공허한 관념이 아니라 물질적 이익에서 발견한 것은 탁월한 예지였다.
등소평의 사상적 토대는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고 자신마저 그 희생물이 되어야했던 모택동의 문화혁명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일수도 있으나, 전통적으로 돈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호전습성속에 자리한 자본주의적 성격을 놓치지 않고 경제개발에 접목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그는 정좌경우에 기초한 중국식 사회주의를 실험하는 가운데 88년엔 사회주의 상품경제, 92년엔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발전시켰고 이제는 21세기 중국의 지도이념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어떤 지도자가 등을 후계하더라도 개방의 대세를 거스를 수 없을 것이며 중국의 대내외 정책에도 큰 변화는 예상되지 않는다.
개방정책에 힘입어 그가 권력을 넘겨받았던 78년에 4백30억 달러에 불과했던 중국의 GNP는 94년에 6천4백86억달러로 불어났다. 중국 전역에는 경제개발의 붐이 일고 있으며 국민 모두가 중국도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그같은 자신감의 회복과 국민적 에너지의 결집을 가능케 한것이 그의 최대 업적인 셈이다.
등의 사망으로 중국에서 혁명 1세대 시대는 마감됐다. 그러나 등은 생전에 호요방 조자양을 거쳐 강택민 현 국가주석겸 당총서기로 이어지는 집단지도체제 형식의 후계구도를 확립, 사후를 대비했다. 이 체제는 지난 7년여간 비교적 순탄하게 기능해왔다.
등이 없는 중국은 「천안문의 모순」을 극복해 개방과 개혁을 완성하는 문제를 비롯 소수민족문제, 권력의 암투 등 불안요소가 없지않다. 중국의 안정은 한반도의 안정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지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지난 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이후 상호이익에 바탕한 교류의 폭이 날로 넓어지고 있다. 등의 사후에도 양국간의 협력이 이어져 한반도 통일은 물론 동북아의 번영과 안정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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