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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베이션 코리아 2014] 버냉키 같은 학자출신 관료 키우자

연구업적 중심 평가·꾸준한 투자 병행

관변학자 지양해야 하지만 '폴리페서' 색안경도 문제

능력따라 관가 진출 늘어야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에는 통화정책에 정통한 교수 2명의 연구실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앨런 블라인더 교수와 벤 버냉키 교수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부의장을 지낸 블라인더 교수는 중앙은행 연구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동시에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 일반인의 판단을 돕기 위한 경제서적을 따로 출판할 만큼 현실 참여적인 학자다. 블라인더 교수보다 젊은 버냉키 교수는 서른 살에 발표한 대공황시대 통화정책에 관한 논문으로 일찌감치 이름을 떨쳤고 이후에도 대공황에 대한 연구물을 끊임없이 내놓아 '디프레션 맨' '헬리콥더 벤'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그는 2006년 연준 의장으로 취임한 뒤 자신의 이론에 따라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방어하면서 능력을 한껏 꽃피운다.

이 학교 출신인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두 교수 모두 사회 참여를 중요시했고 정말 꾸준히 노력하더라"라며 "버냉키는 미국을 금융위기에서 구한 경제학자로서 250년 경제학 역사상 최고의 행운아로 꼽힐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버냉키 같은 학자가 성공적인 관료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학계와 관료사회 의견은 모두 부정적이다. 미국에 비해 턱없이 척박한 학문적 환경도 원인이겠지만 정부 눈치 보기와 정치권에 줄을 대기에 급급한 학계의 후진적 관행 때문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지난달 취임한 한국은행 총재 선임 과정은 국내 학계의 맨살을 드러냈다. 정부 안팎에서는 "학계에서 도저히 인재를 찾기 어렵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한은 총재감이 될 만한 '존경 받는 원로풀'이 그만큼 좁다는 뜻이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논문 표절 문제를 쉽게 넘어갈 학자가 없을 것이라는 낯 뜨거운 관측까지 나왔다.

국내에서 정부정책에 탄탄한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견제세력이 돼야 할 학계가 오히려 관변학자나 정치인으로 변질되는 경우는 흔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학계의 가장 큰 무기는 실력"이라며 "흔히 '맨땅에 헤딩'하는 관료들이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기 위해서는 학계가 과학적인 기본 토대를 제공해야 하는데 아이디어를 줘야 할 학계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거나 관료보다 더 관료다운 경우가 너무 많다"고 비판했다. 그는 "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던 학자도 국내만 오면 '못쓰게 된다(spoiled)'"고 덧붙였다.



학계를 관료들의 들러리가 아닌 전문가집단으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연구업적 중심의 평가와 장기적으로 꾸준한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거시에 비해 연구하기 까다로운 미시 영역에서 연구환경이 너무 척박하다"며 "공정거래, 가정 및 사회 문제 등 정확한 데이터가 없으면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없는 분야는 연구 노력을 높게 인정해주는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독점한 정보 접근에 대한 한계부터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유명 사립대학의 한 교수는 "역대 정부가 하나같이 정보개방을 외쳤지만 요식행위에 그쳤다"며 "정부 입맛에 맞는 홍보자료만 내보낼 것이 아니라 행정정보 공개를 더 투명하고 다양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교수, 이른바 '폴리페서'에 대한 과도하게 부정적인 인식도 도움이 안 될 수 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현실에 관심이 있는 학자에 대해 무조건 색안경을 쓸 필요는 없다"며 "출신이나 가문이 아닌 실력에 따라 인정받는 '메리토크라시'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능력 있는 학자의 진출이 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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