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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배우자 몫 국민연금 논란의 해법


국가가 운영하는 제도 중 국민연금처럼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제도도 없는 듯하다. 황당한 사례로는 '국민연금 8대 비밀'을 꼽을 수 있다. 지난 2004년 인터넷을 통해 국민연금은 이래저래 손해만 보는 문제 많은 제도라는 요지의 글이 유포돼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출처도 모르는 글로 인해 국민연금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열리고 한술 더 떠 국민연금을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지금 되돌아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거센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유족 연금액 80% 못받아 불만 여전

8대 비밀은 대부분 사실을 호도하는 내용이었지만 정책당국이 곤혹스러워했던 '비밀 아닌 비밀'도 있었다. 부부 모두 국민연금에 10년 이상 가입해 노령연금을 받다가 한쪽이 먼저 사망할 경우 자신 명의의 노령연금과 유족연금 중 하나만 선택해 받을 수 있게 한 '중복급여 조정'제도가 뭇매를 맞았다. 이 제도는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급여가 지급되는 것을 막아 모든 국민이 골고루 최소한의 생활보장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사회보험의 일반원리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반발은 매우 거셌고 인터넷에서는 '배우자 몫의 연금을 정부가 꿀꺽 삼킨다'는 극단적 표현까지 등장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본인의 노령연금 외에 유족연금액(배우자 노령연금액의 40~60%+부양가족연금)의 20%를 추가로 받을 수 있게 제도를 고쳤다. 그러나 국민들의 불만은 여전한 것 같다. 국민연금 도입 역사가 짧고 연금보험료율과 노령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높지 않아 노령연금과 유족연금액의 100%를 합쳐도 노후생활비로 턱없이 모자라는데 왜 유족연금액의 20%만 주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부부 중 한쪽이 공무원ㆍ사학ㆍ군인연금 수급자라면 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제도 운영을 책임지는 정부는 고민이 적지 않다. 중복급여 조정을 해도 낸 보험료보다 많이 가져가는 것이 우리 국민연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사회적 위험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따라서 배우자 연금 수급권은 개인연금 차원의 재산권보다는 사회 전체의 자산으로 보는 것이 사회보험 운영원리에 부합한다. 다른 많은 나라들도 공적연금의 중복급여 조정을 하고 있다.



중복급여 조정은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되는 사각지대 축소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현재 전업주부로 대표되는 국민연금 가입 적용제외자, 실직 등의 사유로 보험료 납부를 유예 받고 있는 납부예외자 등 적지 않은 국민들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들이 노후에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임의가입을 독려하고 있지만 현행 중복급여 조정제도는 임의가입 활성화 노력과 상충된다.

노령+유족연금 수준 고려해 조정을

이런저런 상황들을 고려할 때 현행 국민연금 중복급여 조정제도를 재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본전에 대한 집착이 유달리 강한 우리 국민들의 정서와 연금급여의 적정성까지 고려해 제도 보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본인의 노령연금+유족연금액의 20%'로 제한하고 있는 현행 중복급여 조정제도를 독일처럼 '본인의 노령연금+유족연금액의 100%'가 일정 수준을 초과할 경우에만 중복급여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마침 올해는 국민연금제도 전반을 점검하는 국민연금 재정계산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시작된다. 사회연대성에 입각해 운영되는 사회보험제도로서 국민연금의 기본원칙은 확고히 지키되, 한국적 정서와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 제도 개선 논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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