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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업계의 'KT공포증'
입력2002-05-30 00:00:00
수정
2002.05.30 00:00:00
"절대 우리회사이름이나 내 이름을 쓰면 안됩니다. 알겠죠" "아니 아예 이런 내용을 빼주세요. 이니셜도 곤란해요. 괜히 말을 꺼냈네".
열변을 내뿜던 사람이 갑자기 말문을 닫았다. 후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 사람은 초고속 인터넷과 관련한 장비를 개발ㆍ생산하는 벤처기업의 최고경영자(CEO)다.
이미 들은 말에 대해서는 이니셜도 쓰지 않고 절대 피해를 보는 일이 없을 것이며 만약 조금이라도 피해를 보면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했다.
전후사정은 이랬다. 회사가 초고속 인터넷 장비를 개발한다고 해서 "그럼 KT와 협력하면 수출을 많이 할 수 있겠네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회사 사장은 기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뭘 모른다는 반응이었다. "그 사람들을 피해야 그나마 수출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혼자 가서 수출을 추진하면 어느 정도 제값을 받을 수 있지만 KT와 한번 엮어지면 원가에도 못미치는 헐값으로 납품을 해야 됩니다. 그렇다고 싫은 내색을 할 수도 없죠. KT가 우리 같은 중소기업 하나 죽이는 건 아무 것도 아니거든요".
KT는 초고속 인터넷 시장에서 후발주자이면서도 초단기간에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어느덧 보편적인 서비스가 될 만큼 시장이 성숙하자 지난해부터는 수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돈과 힘으로 밀어붙였다는 욕도 많이 먹었지만 KT가 국내 초고속 인터넷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해외에서 진짜 승부를 벌여야 할 때다. 더 치열한 시장에서 우리끼리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서로 반목하고 피해야 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KT가 IT업계에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기 보다는 업계의 맏형답게 중소기업들을 함께 이끌고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기석<정보통신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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