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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자장면 배달·야채 행상하던 소년 미군 장교로'금의환향'

한미연합사작전참모부 박진우 대위


‘자장면 배달→야채 행상→야간 경비→미국 대학원 석사학위 취득→미군 장교’ 가난과 인종편견 등 온갖 역경을 딛고 머나먼 미국 땅에서 성공 신화를 일궈낸 미군 장교가 한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2일 한미연합사에 따르면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부의 연습계획장교인 박진우(40ㆍ사진) 대위는 어려운 가정형편을 이겨내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갖은 고생을 이겨낸 끝에 어엿한 미군 장교로 금의환향했다. 전남 나주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박 대위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피해 단지 돈을 벌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중학교 2학년 때인 지난 1982년 서울로 올라왔다. 자장면을 배달하느라 밤낮으로 뛰어다녔지만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쫓겨나는 등 그의 초기 서울 생활은 고생길의 연속이었다. 얼마 후 박 대위는 막내 동생이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 몫까지 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낮에는 야채 행상을, 밤에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주경야독 끝에 결국 고입검정과 대입검정을 잇따라 합격하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박 대위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안겨준 것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고심 끝에 결정한 미국행이었다. 그는 “큰 나라에서 공부하겠다는 말에 주위 사람들이 한결같이 비웃었다”며 “한 유학업체 사장의 도움으로 1990년 8월 워싱턴의 이스턴주립대학에 조건부로 합격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주머니에 돈 한푼 없었던 박 대위의 미국 생활도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낡은 중고차와 학교 화장실에서 밤을 지새우는가 하면 학비를 벌기 위해 경비원 모집에 응시했다가 영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 당하기 일쑤였다. 박 대위는 “업체 사장이 안 된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고 여덟 번째 찾아갔더니 경비를 맡기더라”면서 “여기서 밀리면 죽는다는 각오로 덤벼들었다”고 회상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1998년 군에 입대한 그는 장교가 되고 싶었지만 미국 시민권이라는 만만찮은 장벽에 또다시 부딪혔다. 그는 미시시피주 상원의원을 무작정 찾아가 자신의 인생 역경을 모두 털어놓고 시민권을 받도록 도와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고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2000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박 대위는 사관후보생(OCS) 시험에 합격해 14주간의 고된 훈련을 마치고 그해 12월 장교로 임관했다. 박 대위는 2001년부터 미군 수송부대 소대장과 지원중대장으로 지냈고 군 복무 중에도 학업을 계속해 물류학석사 학위까지 따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하던 2004년에는 동성무공훈장을 받는 영예도 누렸다. 조만간 소령 진급을 눈앞에 둔 박 대위는 “목표를 크게 세우고 이것 아니면 죽는다는 각오로 달리면 성공한다”며 “앞으로도 도전하는 삶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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