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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갑작스럽게 기자들과 만난 노무현 대통령은 이따금 미소를 띠었지만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넥타이도 평소와 달리 회색톤이었다. 변양균 전 정책실장 등에 대한 질문에 여섯번이나 ‘유감’ ‘난감’ ‘황당’ 등의 단어를 사용하면서 곤혹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도 평화협정 문제, 이명박ㆍ손학규 후보 등에 대해 날선 공격을 이어가는 등 비리 의혹에 따른 수세적 국면을 돌리려 애썼다. ◇변 전 실장, “믿음이 무너졌을 때 얼마나 난감한지….”= “깜도 안 되는 의혹, 소설”이라고 밝혔던 점을 감안한 듯 노 대통령은 “매우 황당한 것은 믿음을 무겁게 갖고 있던 사람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을 때 얼마나 난감한 일인지…”라고 말문을 열었다. “스스로의 판단에 대한 자신이 무너졌다”며 “무척 당황스럽고 매우 힘들다”고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국민들에게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일부 비서진이 건의했지만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전제로 하면 또 난감해질 수 있을 것 같다”며 최종 입장 표명은 뒤로 미뤘다. 정윤재 전 비서관에 대해서는 아직 믿음이 남아 있음을 내비쳤다. 노 대통령은 정 전 비서관과의 기나긴 인연을 소개한 뒤 ‘세무조사 무마청탁’ 의혹에 “부적절한 행위이고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숨겨진 무엇이) 있을 것이다, 없을 것이다 하는 짐작은 가슴속에만 갖고 있고 표현할 수 없다”며 수사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소설…”이라고 얘기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변 전 실장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 그러나 “불법 행위가 있다면 측근비리라고 이름 붙여도 변명하지 않겠다”며 이 문제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음을 내비쳤다. 노 대통령은 특히 수세 속에서도 “권력 누수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레임덕에는 완강함을 표시했다. ◇선거개입 위해 이명박 고소?, 나를 모욕하는 얘기=노 대통령은 “우리 선거법은 대통령을 거세된 정치인으로 규정해놓고 있다”면서 말을 아끼다가 이내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 후보에 대한 고소와 관련, 노 대통령은 “선거 개입을 위해 고소했다는 것은 저를 고의로 모욕하기 위한 얘기”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치가 성역인가. 정치는 법위에 있지 않다”며 “(배후설에) 근거가 없으면 불법 선거운동이고 처벌받아야 한다”고 못박았다. 손 전 지사에 대해서도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것이 선거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졸렬한 전략”이라고 꼬집었다. “대통령의 지지도가 아무리 낮아도 충성스러운 지지세력이 있다”며 근소한 차로 승패가 판가름 나는 대선에서 대통령과 척을 지는 것은 “필패의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차별화 전략을 구사한 정동영 후보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고 “원칙 없는 기회주의자들 싸움에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평화체제 협상 개시 가능=노 대통령은 북핵보다 평화체제가 우선이라는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지금도 북핵 소리를 높이는 것은 정략이다. 6자 회담에서 풀려가고 있는데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북핵을 얘기하라는 것은 가서 싸움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에게 평화협정선언을 제안할 생각인가’라는 질문에 “선언도 있을 수 있고 협상의 개시도 있을 수 있다”며 “협상은 종전에서 평화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일련의 협상 과정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평화선언을) 제안하는 수준이 아니고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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