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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베이션 코리아 2014] 세대갈등 '공존의 길'은 있다 <3> 깡통 주택의 비극

빚 짓눌린 부모 vs 제 살기도 벅찬 자식… 가정해체 위기까지

금융위기후 집값 하락에 국민 1/5이 하우스푸어

취업난·저임금 청년세대 부모 봉양은 이젠 옛말

고용확대·소득증대 통해 가계 주택 구매력 키워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값 하락과 전셋값 폭등 현상이 고착화되면서 주택이 편안한 안식처에서 세대갈등과 가족해체를 유발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조성된 화성 동탄1신도시 전경. /서울경제DB


한국 사회에서 '내 집 마련'은 모든 사람의 꿈이다. 집은 거주공간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한 사람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을 나타낸다. 소위 서울 강남 3구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나 빌라를 보유한 이들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주택은 애물단지가 되기도 한다. 은행 대출 등으로 과도한 빚을 얻어 집을 샀지만 주택가격 하락으로 원리금 상환은 고사하고 살림살이마저 곤궁해진 '하우스푸어'들이 대표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하우스푸어는 156만9,000가구에 달한다. 스스로 하우스푸어라고 느끼는 가구까지 포함하면 250만가구에 이른다. 가구당 4인 가족이라고 가정하면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 5분의1이 하우스푸어의 영향권에 있는 셈이다.

특히 하우스푸어의 대부분은 은퇴를 앞뒀거나 자녀 교육 등으로 생활비가 더 필요한 베이비부머라는 점이 문제다. 베이비부머들은 한때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부의 효과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은행 대출을 끼고 샀던 주택가격의 하락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집값이 더 떨어지지는 않을지 자나 깨나 걱정이다. 정부가 주택경기를 제대로 부양하지 못하는 것도 불만이다.

반면 취업난과 저임금에 고통 받는 청년세대들은 내 집 마련은 고사하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셋값에 허리가 휠 지경이다. 청년세대들에게 현재 집값과 전셋값은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올랐다. 집값이 더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하다.

이처럼 기성세대와 청년세대는 주택 문제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현재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부동산 경기부양에 방점이 찍혀 있다. 한마디로 "빚을 더 내서 집을 사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베이비부머의 가계부채를 자녀세대인 청년층에게 사실상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깡통주택 속출…빚더미에 앉은 베이비부머=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집값 하락이 지속되면서 주택거래가 뜸해지고 과도한 빚을 얻어 집을 산 베이비부머들은 대부분 빚더미에 앉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1,024조8,000억원대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체 주택담보대출에서 주택금융공사 모기지 양도잔액 등을 제외한 대출 총액은 405조원(3월 말 기준)이다. 이 가운데 9.1%가량인 37조원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70%를 넘어선 주택을 담보로 받은 대출이다. 주택가격 하락으로 사실상 갚아야 할 대출이 더 많은 깡통주택들인 셈이다. 원리금 상환이 어려워진 깡통주택 보유자들은 경매로 길바닥에 나앉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김영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소득 대비 부채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으로 부채증가 속도 역시 소득증가 속도보다 빠르다"면서 "가계부채가 소비와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임계치에 도달했다"고 경고했다.



◇주택을 둘러싼 세대갈등 수면 위로=집을 사기 위해 얻은 가계부채가 어깨를 짓누르면서 세대갈등은 물론 화목해야 할 가정이 위기에 처하는 일도 다반사다. 주택 문제로 결혼을 포기하거나 부모가 진 빚의 승계를 피하기 위해 인연을 끊는 경우도 있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부모의 도움 없이는 전셋집을 마련하기 어려워 부모 봉양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가 돼버렸다.

소위 IMF 세대인 직장인 L(43)씨. 대학 졸업을 앞두고 IMF가 터져 백수로 몇 년을 보내다가 30세가 넘어 겨우 사회진출에 성공했다. L씨는 "취업도, 결혼도 늦어 애들도 늦게 낳았다"며 "애들을 대학까지 졸업시키려면 정년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해야만 한다. 노부모를 모시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말했다. 현재 L씨의 가장 큰 고민은 2년마다 급등하는 전세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자녀 결혼 때 전세금조차 지원하지 못하는 부모들도 자식 앞에서 고개를 들기 힘들다. 1955년생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인 K(59)씨. 지방은행에서 지점장으로 일하다가 IMF 당시 명예퇴직했다. 퇴직금으로 이런저런 자영업에 나섰으나 연이어 실패했고 술로 밤을 지새우다 뇌출혈이라는 병까지 얻었다. 지금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생활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K씨는 "최근 아들이 전셋집을 구할 수 없으면 헤어지자는 여자친구의 통보를 받고 결혼을 포기했다"면서 "전세금을 보태주는 것은 고사하고 다달이 용돈을 받아 쓰고 있으니 미안하기 짝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주택시장 문제, 고용과 소득증대로 풀어야=전문가들은 깡통주택·하우스푸어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고용확대와 소득증대라고 입을 모았다. 안정적인 고용을 제공해 소득이 증가하면 매입 수요가 늘어나 주택가격이 완만하게 상승하면서 다른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다는 얘기다. 청년세대가 내 집 마련을 포기하면 주택가격이 추가 하락하고 경기불황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우려가 큰 만큼 정부도 세대갈등 차원에서 주택시장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한 민간연구소 연구원은 "내 집 마련의 중간 사다리이자 환승역이었던 전세시장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며 "청년세대들이 안정적으로 자기 집을 가진 중산층으로 발돋움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 같은 관점에서 청년층의 고용불안 해소와 소득증가·복지증대 등을 통해 주거안정을 꾀하면서 실질적인 주택 구매력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제기된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주택으로 발생하는 (세대) 갈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경기부양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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