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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색이 완연해진 경북 구미의 드넓은 들판. 차창너머로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찾아간 LG필립스LCD공장 현장은 계절의 변화를 잊은 듯 작업열기로 한여름 같았다. 축구장 7개 크기의 거대한 LCD 생산라인(P6) 공장 건물외벽에는 ‘월드 넘버 원 LCD 컴퍼니’라는 구호가 짙게 붙어있었고, 생산라인과 회의실 벽마다 구본준 부회장과 론 위라하디락사 최고재무책임자(CFO) 사장 등 경영진 7명의 얼굴을 한 로마장군들이 백마를 타고 ‘세계정복’을 진두지휘하며 호령하고 있었다. 2005년 8월. 회사창립 10주년을 맞는 LG필립스LCD 구미공장 현장은 한마디로 ‘1등LG’의 열기와 자신감이 넘쳐났다. 그러나 돌아보면 지난 10년 인고의 시절도 있었다. 이영득 구미사업장 경영기획 담당 상무의 회고. “지난 2002년 7월, LG필립스LCD의 전임직원들과 협력사 직원들은 ‘눈물 젖은 보리쌀’이란 글귀가 적힌 보리쌀 한 봉지씩을 받았었습니다. 2001년 우리들이 직접 심었던 씨앗이 맺은 수확물이었죠. 우리 회사는 2000년대 들어 1조6,000억원을 투입해 세계 최초로 5세대 라인을 가동했지만 전세계 LCD 산업이 공급과잉으로 극심한 침체기를 맞아 차세대(6세대) 생산을 위해 확보한 부지에 잔디 대신 보리를 뿌렸어요. 엄동설한을 이겨내는 보리처럼 극심한 어려움을 헤쳐나가자는 의지의 표현이었지요.” 이듬해 보리가 익어갈 즈음, LG필립스LCD는 시장이 다시 살아나면서 매출과 수익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 해 연말 세계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서는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때마침 수확된 보리쌀은 직원들에게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있다는 자신감으로 되돌아왔다. ‘1등 합시다’라는 회사의 인사구호는 ‘확실히 1등 합시다’로 바뀌었고 직원들의 명함에는 ‘일등 인재, 일등 회사(No.1 Members, No 1. Comapany) 문구가 새겨졌다. 이 상무는 “이 곳에서는 직원들이 사진촬영을 할 때도 ‘치즈’ 대신 ‘LCD’란 말을 사용을 정도로 열정을 갖고 일하고 있다“며 “과거 ‘눈물 젖은 보리쌀’을 받았던 직원들은 지금도 대부분 집에 고이 간직하면서 그 교훈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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