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M&A)의 큰 장이 설 것이다."
보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요즘 업계의 하드웨어 재편이라는 도도한 흐름을 대세로 인정한다. 실제로 그렇다.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저금리·저성장 기조는 보험사들의 수익구조를 갉아먹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은 중형 보험사 2곳을 '예의 주시' 대상으로 지목하고 집중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미 많은 매물이 시장에 나와 있다. 생명보험사·손해보험사 가릴 것 없다. 아직 버틸 만한 대형사들은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자본력이 남다른 대형 금융지주사들은 보험사를 사들일 기회만 호시탐탐 엿본다. 빅뱅의 전조다.
이처럼 많은 보험사들이 위기를 이야기하지만 한편으로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장기 저금리는 역설적으로 보험산업이 이제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명분이 되고 있다고 조언한다. 국가경제를 옥죄는 고령화 현상이 늙음과 위험을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는 보험산업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은 대세가 됐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보험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역할론을 찾으라는 주문이다.
◇보험산업, 빅뱅 임박=지난 6월 KB금융지주가 LIG손해보험 인수계약을 체결하며 금융지주 산하 손보사가 탄생했다. 그동안 손보업계는 대기업 계열 '빅4' 구도로 전개돼왔다.
KB손해보험(가칭)의 출현으로 이 구도는 깨졌다. KB금융지주는 은행과 손보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생보는 손보보다 더 태풍 전야다. 시장에 나와 있는 매물이 수두룩하다. KDB생명·ING생명·동양생명 등은 새 주인을 맞이할 채비를 이미 끝냈다. 이 중 동양생명과 ING생명은 시장점유율도 의미 있는 수준이다.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생보업계 지형도에 균열이 일어날 수 있다.
여기에 NH농협생명은 스스로 발현하고 있다. 독립법인 분사 3년 만에 업계 4위의 지위를 넘보고 있다. 업계와의 신사협정 만료 이후 변액보험을 취급하게 되면 '빅2'로의 도약도 가능하다.
같은 줄기에서 NH농협손보가 자동차보험을 다루기 시작하면 손보업계 순위도 요동칠 수 있다.
교보생명은 보다 고차원적인 셈법이 필요하다. 지금껏 목격한 보험산업 빅뱅이 금융지주사가 보험사를 인수하거나 보험사끼리의 결합에 국한됐다면 교보생명은 보험사가 주체가 된 새로운 형태의 금융실험이 가능하다. 이른바 '어슈어뱅크'다.
보험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은행·보험·증권 등 금융영역의 경계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많은 실험이 나타날 것"이라며 "M&A 전개방향에 따라 보험산업 전반에 큰 변화가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수익구조 바꿔야 체질개선 가능=전문가들은 근시안적인 보험산업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중에서도 수익구조 개선이 시급하다.
우리나라 보험사의 수익구조는 비차익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11회계연도 말 현재 전체 손익에서 비차익 비중은 54.5%에 달한다. 생보의 경우 그해에 총 4조3,000억원의 당기순익을 냈는데 2조4,000억원이 비차익에서 발생했다.
보험사들은 1990년 말부터 이차역마진이 심화되자 비차익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차익은 기본적으로 금리에 비례하는데 저금리가 계속되면서 역마진이 발생했다. 그러나 비차익 중심의 수익구조는 한계를 갖고 있다. 비차익은 보험료가 완납되면 크게 축소되는 경향이 짙다. 신계약이 계속 유입되지 않으면 꾸준한 비차익 유지가 어렵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위험률차익(사차익)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위험률차익은 예정사망률이 실제사망률보다 높아 발생하는 이익을 말한다. 쉽게 말해 1만명 중 100명이 사망할 경우를 대비해 보험료를 산정했는데 실제로는 80명만 사망했다면 그만큼 차익이 발생한다. 우리에 앞서 이차역마진 문제를 경험한 일본이 문제해결을 위해 선택했던 것이 위험률차익이었다. 2012회계연도 말 현재 일본 상위 5개 생보사의 위험률차익이 전체 수익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가 넘는다.
김석영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위험률차익이 보험의 본질적 역할에 보다 가까운 부분이고 일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다양한 상품공급을 통해 보험의 사회적 역할도 강화할 수 있다"며 "비차익 중심의 수익구조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구 고령화는 위기이자 기회=정부는 7월 중순 '보험혁신 및 건전화 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미래를 읽어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사회변화상 중에서도 고령화는 보험산업의 위기이자 기회다. 보험은 미래위험을 대비한다는 기본 속성상 고령화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더구나 보험은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연금체계의 공백을 메워줄 최적의 대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오는 2030년께 5,200만명까지 증가한 후 감소세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간 연령층 인구는 이미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2012년 말 현재 837만명에서 2030년께 673만명으로 크게 줄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현재 보험산업의 주된 고객층인 35~44세 연령 인구가 크게 감소한다는 것인데 이 자리는 고령 인구가 차지한다. 이들이 보험산업의 주고객이다.
이 같은 급격한 변화에도 보험산업의 고령화 시대 대비책은 의미 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당장 제대로 된 고연령 시장통계를 갖추지 못했다. 고연령층은 젊은 계층에 비해 건강상태가 불확실해 손실 가능성이 높다. 모든 보험사가 고령화 현상을 기회로 삼고자 해도 상품개발에 난관을 겪는 이유다.
안철경 보험연구원 부원장은 "공고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려면 공적·사적 안전망의 콤비네이션(결합)이 필수적"이라며 "정부의 재정적 한계 등을 고려하면 이 역할을 보험산업이 분담해줄 필요가 있고 이를 정부가 제도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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