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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비 같은 잡비를 줄이는 것은 기본이고 전기 아끼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이런 적이 없었어요. 요즘 분위기는 그때보다 더 한 거 같아요." 삼성 그룹 보험계열사의 한 관계자가 전한 내부 분위기다.
사실 금융권의 비상경영 선언은 경기 침체기에는 약방의 감초 같은 성격이 있다. 심하게 말하면 연례행사 같은 측면이 있어 무감각해질 만도 하지만 이번에는 예년과 기류가 사뭇 다르다.
실제로 삼성 금융계열사의 실적에는 적신호가 켜져 있다. 삼성생명의 경우 2조원이 넘던 당기 순이익이 2011회계연도에 58.7% 감소한 9,327억원으로 주저앉았다. 올 4~6월 실적도 전년 대비 9%가량 하락한 2,421억원으로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연초 잡은 삼성생명의 올해 이익 전망치를 크게는 10%가량 하향조정하고 있다.
삼성화재도 같은 기간 순이익이 2,512억원으로 8%가까이 하락했다. 삼성카드도 올 상반기 순이익이 1,559억원(에버랜드 지분매각 이익 5,350억원 제외)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가량 감소했다. 특히 삼성카드는 수수료율 인하에 이어 정부의 규제 강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고 여기에 리볼빙서비스 등이 부실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금융 계열사 중에서도 가장 위기의식이 크게 감돌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의 실적만 놓고 보면 경기침체 국면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최악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보기에 따라서는 선방했다고 볼 수도 있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삼성그룹 금융계열사들이 비용절감 등 대대적인 원가혁신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미래의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탓이다.
보험사의 경우 초저금리 시대 도래 가능성, 정부의 비과세 혜택 축소 움직임 가속화 등으로 경영여건이 더 암울해지고 있다. 신계약 체결은 불황으로 지지부진하고 자산운용실적도 저금리로 변변치 않아 좌우편 날개가 모두 신통치 않은 상황이다.
카드 업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경기불황으로 연체율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형 확장 경쟁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 경제가 저성장 사회로 접어든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어 경영전략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IMF)나 2008년 금융위기 때만 해도 '이 시기만 견뎌내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있었지만 현재는 이런 가정 자체를 신뢰하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불황의 파고가 얼마나 더 깊은 상처를 남길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셈이다. 내부 직원들이 이번 비상경영에서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위기감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마른 수건도 다시 짜면서 직원들에게 우리가 현재 어떤 입장과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절감하도록 하는 효과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며 "아무튼 부서마다 낭비요소를 최대한 가려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 3사는 올해 명예퇴직 등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보험사의 경우 지난해 일부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한 탓도 있지만 앞으로 경영상황에 따라 계획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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