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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경제학에도 자연과학을 더해야 합니다. 인간의 행동·본성을 연구하는 인지과학·진화심리학과 경제·경영학이 만나야 경제 문제를 예측하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최재천(61·사진) 국립생태원장은 최근 경기 수원시 파장동 경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다윈, 21세기를 품다'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금융위기 예측 실패 등 현재 경제학이 안고 있는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의 초대 원장을 지난 2013년부터 맡아온 최 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은 미 하버드대·미시간대 교수 등을 역임하고 1989년 미 곤충학회의 '젊은 과학자'로 선정된 국내 대표 생태학자 중 한 명이다. 인문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범학문적 연구를 설파하는 '통섭(統攝)'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경제학은 '인간이라는 동물이 합리적'임을 대전제로 두고 있지만 실제로 인간은 그렇지만은 않다"고 지적했다. 인간의 충동·욕구 등을 파악하기 위해 자연과학의 객관성을 보탠다면 경제학의 예측 능력은 한층 높아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결국 인간이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를 연구하고 생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숙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 주체를 개성 없는 각각의 입자로 본 기존의 경제학을 이른바 뉴턴경제학이라고 말한다면 이제는 인간 본성을 더 이해·분석하는 다윈경제학 시대"라며 "이미 미국 등 선진 경제학계에서는 행동·신경·진화경제학자들이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가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이를 외면한 채 천편일률적 연구 행태만 지속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 원장은 유독 국내에서 주목을 끌지 못하는 진화론 창시자 찰스 다윈을 알리기 위해 뜻을 같이한 학자들과 함께 2009년 저서 '21세기 다윈 혁명'을 낸 '다윈 전도사'다. 가장 잘 알려진 다윈의 학설 '적자생존(the survival of the fittest)'에 대해 최 원장은 아쉬움을 갖고 있다. 저서 '종(種)의 기원(1859)'의 핵심이 된 이 용어가 '가장 잘 적응한 종이 생존한다'보다는 '가장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로 왜곡돼 현재 무한 생존경쟁의 이론적 바탕이 되고 있기 때문. 원래 다윈은 '자연선택' 개념을 설명했고 '적자생존'도 다윈이 아닌 그를 추종하는 영국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1864년 처음 사용했다. 최 원장은 "'적자생존' 표현은 최상급이 아니라 비교급으로 써 '함께 살되 그래도 더 적응하는 종이 잘 산다'는 의미로 해석돼야 했다"고 말했다.
공생을 위한 도구로 최 원장이 제안한 것은 '경협(競協·coopetition)'. 경쟁(competition)과 협력(cooperation)의 합성어다. 그는 "세계 굴지의 항공사, 자동차 업체들이 동종 경쟁사들과 손잡는 것도 하나의 생존 방식"이라며 "우리의 삶도 경쟁하는 듯 서로 협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동체 구성원에게 해를 주지 않고 협동하며 그 속에서 자신이 조금 더 노력하는 것이 잘 사는 방법"이라며 "결국 경쟁과 협력을 적절히 조율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지식의 한계를 넘기 위해 서로 묶고 종합하는 기술이 통섭"이라며 "이제 융합과 통섭은 대세가 아니라 현실인 것을 깨닫고 끊임없이 대화와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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