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인구와 소득은 줄고 생산성도 추락하면서 성장동력을 상실한 ‘쇠퇴도시’로 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개발(R&D)ㆍ제조업의 탈(脫)서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대체할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도시가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13일 허문규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내놓은 ‘지역성장과 지역변동 경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은 주력산업이 된 서비스업의 질적 향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앞으로 쇠퇴지역이 될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은 지난 75~84년까지는 1인당 지역 내 총생산(GRDP)이 전국의 23.2%로 경기ㆍ부산ㆍ제주 등과 함께 성장지역으로 분류됐지만 이후 쇠락을 거듭해 85년부터 94년까지 10년 동안은 정체도시로, 이후 95년부터 2004년까지는 전남ㆍ강원 등과 함께 쇠퇴도시로 추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서울은 2004년 GRDP가 전국 평균을 100으로 할 때 111.1로 전남과 경남 등에도 뒤떨어지며 6위에 머물렀다. 보고서는 7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 단위로 주요 11개 도시의 GRDP와 인구변화 등을 토대로 ‘성장ㆍ정체ㆍ쇠퇴ㆍ잠재성장’ 등으로 나눠 분석했다. 성장지역은 인구ㆍ소득 증가, 정체는 소득 감소, 인구 증가, 쇠퇴는 소득ㆍ인구 감소, 잠재성장은 소득 증가, 인구 감소를 뜻한다. ● 공장 이전·노동력 유출·지역경제 악영향 '85년 이후부터 성장세 멈춰' 산업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서울과 부산 등 우리나라를 끌어온 전통 대도시들이 새로운 성장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빠르게 쇠퇴해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행정수도 이전 등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앞으로 10년 안에는 쇠락의 속도가 더욱 가파르게 진행될 것임을 시사한 셈이다. ◇서울ㆍ부산 등 대도시 성장에서 쇠퇴로=지난 75~84년에는 서울ㆍ부산ㆍ경기ㆍ제주도 등 4곳이 성장지역으로 분류됐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으로 볼 때 서울과 경기가 각각 23.2%, 36.5%를 차지했다. 인구도 유입도 대규모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 이후부터는 사정이 다르다. 85~94년에는 경기도는 성장지역 위치를 유지했으나 서울ㆍ부산은 정체도시로 추락했다. 주요 원인은 1인당 GRDP가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실제 85~94년 동안 서울지역의 소득은 전국 평균보다 15%, 부산은 59% 감소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대도시의 추락은 계속 이어져 95~2004년에는 서울ㆍ부산이 쇠퇴 지역으로 분류되기에 이르렀다. 소득은 물론 인구도 줄면서 생산성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화려했던 도시의 영광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강원ㆍ전북 등 2개 도시는 75년부터 2004년에 이르기까지 쇠퇴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층남ㆍ충북 등 충청권은 대덕특구 개발 등으로 인해 75~84년 쇠퇴지역에서 95~2004년에는 성장지역으로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 ◇도시 부침, 제조업 탈도시화가 주 원인=허문규 부연구위원은 서울ㆍ부산 몰락 등의 원인에 대해 제조업의 탈도심화를 꼽았다. 그는 "부산의 경우 신발 산업이 동남아시아로 이전된 것이 크게 작용하는 등 제조업이 도심에서 부도심, 그리고 해외로 이전된 것이 작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제조업의 탈도심화는 노동력 유출로 이어지면서 지역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친 셈이다. 반면 경기도가 인구가 급증하는 가운데 1인당 지역 GRDP가 꾸준히 상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드문드문 제조업 공장 신증설이 가능했고 이에 덧붙여 R&D 기능도 강화되면서 연구ㆍ생산ㆍ소비 등 3박자가 맞춰진 데 따른 것이다. 허 위원은 "충남이 약진한 것도 결국 서울ㆍ경기를 떠난 업체들이 이곳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라며 "결국 수도권의 외연적 확장에 의한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는 도시간 소득 격차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전국 평균을 100으로 했을 때 1인당 GRDP가 가장 높은 지역과 낮은 지역을 비교해본 결과다. 90년에는 이들 지역간의 격차가 1.6배인 반면 2004년에는 2.3배로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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