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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백화점에 중기 매장 요구] 동반성장 조급증에 기업 옥죄고 시장질서 파괴 '관치의 전형'

매장 운영하고 있는 업체도 입점권유 명단에 버젓이 포함<br>이윤추구 사기업에 봉사 강요… 기존 업체는 퇴점 날벼락<br>"판로 확보 취지 이해하지만 도 넘은 처사… 위법 우려도"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소집한 오찬간담회에서 대형 유통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이 경직된 자세로 공정위 측의 설명을 듣고 있다. 공정위는 최근 백화점 등에 중소기업 전용매장 설치를 강요해 업계와 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서울경제DB


서울경제신문이 단독으로 입수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중소기업 매장 요구 메일은 공정위가 한건주의 전시행정을 위해 시장을 파괴하고 기업의 목을 죄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동안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 협약, 기름값 등 물가잡기, 판매 수수료 인하 등을 강요해온 공정위가 급기야 백화점 내 중소기업 매장 영업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심각한 점은 공정위의 이 같은 행태가 실질적인 효과보다 구태의연한 전시행정에 그칠 게 뻔하다는 사실이다. 온라인,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똑똑한 구매를 하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억지로 중소기업 제품을 들이미는 식의 발상이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상린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에 강제로 봉사를 강요하는 것"이라며 "설령 억지로 유통업체들이 이를 따른다고 해도 오래갈 수 없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심한 공정위, 이미 입점업체도 넣어라 강요=지난달 25일 대형 유통업체 동반성장 업무 담당자들에게 한 통의 e메일이 도착했다. 발신자는 공정위 기업협력국 가맹유통과였다.

중소기업유통센터에서 중소기업 히트 500의 백화점 내 상설매장 설치 여부를 답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울러 입점할 중소기업 소개와 이 업체들이 판매하는 제품별 이미지와 가격ㆍ장점 등을 담은 목록이 첨부됐다.

공정위가 이번에 대형 유통업체에 입점을 권유한 중기 업체는 총 81개. 각 업체별로 내놓은 제품은 생활용품ㆍ미용기구ㆍ화장품ㆍ소형가전 등 다양하다.

이 중에는 한경희 스팀청소기, 쿠쿠 홈시스 등 시장에서 이미 성공한 중기 제품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들은 대형 유통업체에 자체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일부 아이디어 상품을 제외하고 현재 매장에 있는 상품과 겹치는 것이 상당수"라며 "중기전용 매장 설립 취지는 이해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백화점 관계자들은 기존 중소기업 매장과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답답해하고 있다.한 백화점 관계자는 "점포공간은 한정돼 있는데 공정위가 추천한 중기 제품을 넣기 위해서는 다른 중기 업체 제품을 뺄 수밖에 없다"며 "히트 500 기업을 위해 다른 중소기업이 희생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공정위ㆍ유통센터 한건주의 도 넘어=공정위가 이처럼 무리한 시도에 나선 것은 유통센터가 단독으로 추진해온 중기 전용 매장 입점사업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통센터는 올 초부터 주요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개별 접촉해 매장 설치 여부를 타진해왔지만 전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전시행정의 최초 장본인은 유통센터였던 것.

결국 유통센터는 지난해부터 판매 수수료 인하 등 유통업체들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공정위를 끌어들였다. 이에 공정위가 응한 것을 보면 공정위는 동반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한건 올릴 수 있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최근의 동반성장 분위기에 맞춰 눈에 보이는 성과를 빨리 내야 한다는 정책적 조급증이 작용한 탓으로 분석된다.

◇유통업체·전문가들 "시장 무시한 탁상행정"=문제는 공정위가 유통산업의 영업 부문에 관여하면서 부작용이 속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통업계는 중기유통센터와 공정위가 산업의 특성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공정위가 나서서 중기 상품을 거론하면서 상설매장을 내놓으라는 것은 과도하다"면서 "다른 중기 입장에서 봤을 때는 불공정한 행위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이미 매장 구성이 끝난 상태라 중기 매장을 열려면 기존에 입점한 업체를 쫓아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일단 임시매장인 팝업스토어를 열자고 제의했지만 중기유통센터는 정식매장을 요구하며 시큰둥한 반응"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통상 백화점은 2월에 상품구성(MD) 개편을 완료하는데 중기유통센터는 3월에 매장 공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해부터 공정위와 유통업체가 힘겨루기를 이어가는 상황인 만큼 공정위의 요구를 업체들이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번 공정위의 '요청'이 결국 법적 강제와 다를 바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중소기업 판로 확보라는 취지도 이런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며 "법적 문제 등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발생할 우려도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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