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59)씨 가족은 일명 '알바 가족', 즉 아르바이트하는 가족이다. 아버지인 이씨부터 부인 임모(56)씨, 큰딸(32)과 둘째 딸(29) 모두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씨는 중소 제조업체를 다니다 몇 해 전에 퇴직했고 두 딸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한 '백조'들이다.
이씨의 수입만으로 가계를 꾸려가기 어렵자 부인까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곧 60세를 바라보는 이씨 부부가 정규직에 취업하기는 쉽지 않다.
이씨의 가장 큰 고민은 부부의 건강이나 가계를 꾸려나갈 생활비가 아니다. 두 딸의 장래다. 이씨가 그래도 직장에 다닐 때는 딸들의 취업 부탁도 하고 간간이 중매가 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두 딸이 말 그대로 골치 아픈 짐덩어리다. 시집이나 가라고 성화를 하는 이씨 부부의 잔소리에 두 딸은 이제 대꾸도 하지 않는다.
특히 엄마인 임씨의 속은 이미 시커멓게 탔다. 대학 졸업 이후 취업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두 딸을 시집이라도 보내야 하는데 마땅한 혼처를 찾기 어렵다는 생각에 억장이 무너진다. 맞벌이가 대세가 된 시대, 남자들은 여자의 외모보다 일자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신랑감을 찾는다 고 해도 남들만큼 혼수를 준비해줄 능력이 안되는 현실이 서글프다. 이럴 때는 남편인 이씨조차 원망스럽다.
딸들 역시 불만이 적지 않다. 치열한 경쟁 속에 취업을 못한 것은 본인들의 책임이라 쳐도 일자리 문제를 결혼과 연관 짓는 것은 견디기 어렵다. 적지 않은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끼는 사회의 냉대와 시선도 힘든데 부모조차 "차라리 시집이나 가라"며 떠미는 것은 인간적인 모멸감에 가깝다. 이제는 친구도 만나기 싫고 자꾸 대인관계를 기피하게만 된다.
물론 이씨 가족의 생활이 대한민국 평균 가정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일자리 문제가 한 가족 구성원이 얼마나 고통을 받을 수 있는지,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갈등의 근원이 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시간급 최저임금은 5,210원, 일당은 4만1,680원(8시간 기준), 월 급여는 108만8,890원(209시간 기준)이다. 풀타임으로 일할 수 없는 학생들의 경우 일당을 벌어 용돈으로 사용하거나 방학·휴학기간에 모아서 학비로 충당할 수 있는 알토란 같은 돈이지만 한 사람이나 가족의 생계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돈만이 아니다. 비정규직도 아닌 임시직 아르바이트로 일할 때 받는 처우를 고려하면 고통의 크기는 더욱 커진다. 아르바이트는 미래가 없다는 것도 가장 큰 문제다. 정규직 전환 등은 꿈일 뿐이고 고용구조가 열악하다 보니 4대 보험 등의 적용을 못 받는 것도 다반사다. 이는 고스란히 한 가정의 삶의 무게로 전해져 온다.
이씨는 지난 30년간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충실했건만 아직도 노동의 무거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임시직을 전전하게 되면서 가족들을 볼 낯이 없다. 툭하면 돈 문제로, 자식들 문제로 부부 싸움이 잦아진다. 자식들도 아버지를 외면한다. 가족들이 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 시간도, 대화도 점점 사라져만 간다. 대화가 없으니 서로에 대한 불만과 갈등만 쌓여간다. 아르바이트하는 가족의 하루는 또 이렇게 지나간다. /김정곤기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