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2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낮췄다. 시장의 예상보다 인하폭은 컸다. 기준금리 2.0%는 한은 역사상 최저 수준이다. 논란이 일었다. 자칫 한국 경제가 유동성의 함정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컸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인 2008년 10월부터 3개월간 기준금리를 무려 2.75%포인트나 낮춘 데 이어 0.5%포인트를 추가로 인하해 2.0%의 금리는 물가를 감안하면 사실상 제로금리나 마찬가지였다. 숱한 논란을 야기했던 기준금리 2.0%는 17개월을 유지했다.
기준금리 2.0%의 시기는 다시 올까. 한은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2.25%로 낮추자 역사적 저점인 2.0%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 경제가 (일본식) 디플레이션 초입 단계"라고 말한 것을 두고 시장에서는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최 경제부총리는 더 나아가 10일 판교를 방문해서도 "(한은이) 세계 경제가 돌아가는 상황이나 2·4분기 국내총생산(GDP) 지표를 보고 있기에 이를 고려해서 판단하지 않겠느냐"면서 수위를 높였다.
시장의 예측이 한발 앞서면서 이주열 한은호는 딜레마에 빠졌다. 무엇보다 기준금리를 낮출 경우 역대 최저라는 부담이 크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만큼이나 상황이 나쁘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한은 내부에서는 경제부총리가 제기한 '디플레이션' 발언이 썩 달갑지 않다. 경기 흐름에 대한 미묘한 시각차이도 있는데다 자칫하다가는 '압박'에 끌려가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환율도 변수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의 깜짝 금리인하로 유럽 자금이 국내로 들어올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 이렇게 되면 원화강세 기조가 강해져 경기회복을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수입물가 하락으로 디플레이션 압박이 커질 수도 있다. 원화강세로 이미 2·4분기 명목 GDP 성장률은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0.4%)를 기록했다. 하지만 가계부채 부담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달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한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켜보겠다"는 말만 반복한 이유다.
고차원 방정식에 빠진 한은과 달리 시장은 인하 쪽으로 기울었다. 권영선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9월에는 동결할 가능성이 높다. 금리인하 시점은 4·4분기로 보고 있다"면서 "경기와 물가의 하방 위험이 커져 인하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좀 더 구체적이다. 그는 "한은이 10월 수정 경제전망 때 올해 경제성장률과 물가 전망치를 낮추고 11월에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것"이라며 "경제지표 회복이 더딘 모습이 한두 달 더 이어지면 '칼자루'를 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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