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해진 살림살이 때문에 덜 먹고 덜 썼다. 내복을 껴입어가며 한겨울 난방용 기름도 덜 땠고 아이 학원비까지 줄이면서 가계부의 '최후 성역'이라는 자녀교육비까지도 아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계비 부담은 도리어 더 늘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소비를 줄여도 지출비 부담은 높아지는 '가계부의 역설'이 현실화됐다. 물가가 워낙 고공행진을 한 탓이다. 알뜰살뜰 허리띠를 졸라매면 살림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통계청이 24일 내놓은 '2011년 4ㆍ4분기 및 연간 가계동향' 자료를 보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실질 소비지출 증감률은 지난해 4ㆍ4분기 -0.8%를 기록해 지난 2009년 2ㆍ4분기 이후 2년반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실질 소비지출이란 가계가 소비에 쏟아 부은 명목 지출액에서 물가 상승분을 제거한 것을 의미한다.
반면 물가 상승분까지 포함한 명목 가계소비지출은 같은 기간 도리어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4ㆍ4분기 명목 소비지출이 3.1% 늘어난 것.
통계청 관계자는 "실질 소비지출이 감소세로 돌아섰는데도 명목지출이 늘어난 것은 물가가 워낙 높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물가상승을 주로 자극했던 것은 기름값과 농축산물 가격이었다. 그런 탓인지 지난해 가계의 실질 연료비 지출은 전년보다 3.6% 감소했으며 실질 식료품비 지출은 같은 기간에 0.9% 줄었다.
그럼에도 기름값 상승분을 상쇄하지 못해 지난해의 명목 연료비 지출은 전년보다 2.6% 늘었으며 명목 식료품비 지출은 7.1%나 증가했다.
이 같은 현상은 가계 소비지출의 명목 증가율과 실질 증가율 간 괴리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전체 소비지출의 명목 증가율에서 실질 증가율을 뺀 갭(차이)은 2009년 2.8%포인트에서 점진적으로 커져 2011년에는 4.0%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이 같은 실질ㆍ명목 소비지출 간 괴리현상은 올해도 지속돼 가계의 형편을 악화시키고 내수둔화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올해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보다 낮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현재 물가수준 자체가 절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통계상 상승률이 다소 누그러져도 가계의 체감도는 여전히 추울 것 같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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