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백에는 화장품이나 거울처럼 여성들이 사용하는 물건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휴대폰이나 MP3플레이어 같은 디지털 기기(IT기기)도 빠지지 않는다. 이제 디지털 기기는 화장품과 함께 여성들이 외출할 때 꼭 챙겨야 하는 필수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IT 기기 시장에서 여성들의 파워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멋진 풍경이나 상품을 보자마자 디카에 담아 블로그에 올려놓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여성의 취향을 무시한다면 매출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거의 모든 IT업체들이 제품 개발단계에서부터 여성을 겨냥한 색상과 디자인을 고려한다. ◇IT기기의 트렌드를 주도=IT기기의 트렌드는 이제 여성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기존 IT기기가 전문성과 기능성을 강조했다면 이젠 여성들에게 친숙한 심플하고 세련된 IT기기가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 상당수 기업들은 제품을 사용하기 쉽도록 단순하게 만드는 동시에 화려한 디자인과 세련된 스타일을 추구한다. 그래야 여성의 구매를 유도할 수 있다. 특히 두께가 얇은 제품의 경우 핸드백에 들어가도 전혀 표시가 나지 않는다.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밖에 없다. 최근 IT기기의 특성이 기술에서 디자인쪽으로 이동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박기형 후지필름 마케팅 이사는 "IT기기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구매결정 과정에서 여성의 발언권이 확대되는 추세"라며 "이제 여성들은 IT기기의 트렌드를 이끄는 주체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들은 블로그 등을 통해 인터넷 문화를 주도한다. 사진은 찍는 것에서 남에게 보여주는 문화로 자리잡게 만든 것도 여성이다. 여성들은 디지털카메라 등으로 사용자제작콘텐츠(UCC) 형태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놓는데 남성보다 적극적이다. ◇컬러 마케팅은 필수=최근 들어 핑크, 퍼플 등으로 IT기기의 색상이 다양해지는 것도 여성 고객을 고려한 결과다. 여성은 검은색이나 흰색 같은 평범한 색상보다 개성을 한껏 표현할 수 있는 색상을 선호한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핑크색은 금방 싫증을 느끼게 되고, 유치해 보인다는 이유로 외면당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초기 제품에서도 자주 채택된다. 삼성전자의 MP3P '옙-Z5'와 '옙-T9'은 출시하기 전부터 핑크 및 퍼플 제품을 내놓기로 결정했다. 20대 상품기획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디자인 트렌드를 조사한 결과를 충실히 반영했다. 이런 제품 기획은 큰 성공을 거뒀다. 옙-Z5 핑크 색의 경우 전체 제품 판매량 가운데 30% 이상을 차지한다. 유승철 삼성전자 AV마케팅 차장은 "핑크 같은 다양한 색상을 찾는 여성 고객들이 많다"며 "여성 고객에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색상의 제품을 조만간 추가로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후지필름의 디지털카메라인 '파인픽스 Z3'는 아에 전세계 여성을 타깃으로 기획된 제품이다. 핑크, 실버, 블루 3가지 색상 중 국내에서는 90%, 전세계적으로는 60%의 소비자들이 핑크 색 제품을 선택했다. 후지필름이 구매자 1만명을 대상으로 구입 동기를 조사한 결과 67%가 '색감과 디자인이 예쁘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여성이 색상과 디자인에 그만큼 민감하다는 얘기다. ◇액세서리 같은 IT기기=보통 귤의 무게는 120g, 토마토는 250g내외 수준이다. 반면 MP3P의 무게는 100g, 디지털카메라도 200g 전후다. IT기기가 간식거리로 핸드백에 넣어 다니는 귤보다도 가볍다. IT기기 업체들이 휴대성을 높이기 위해 크기와 무게를 줄이는 데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IT기기는 디자인과 장식을 강조하면서 점차 액세서리화 되고 있다. 휴대폰은 통화수단에 그치는 게 아니라 패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여성의 휴대폰 교체주기는 남성에 비해 짧아진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여성 고객 중에서는 스타의 패션, 이미지 등을 모방하는 '워너비(want to be)족(族)'이 많다.신규 수요를 창출하는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업체들은 워너비족에 신경을 많이 쓴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이효리, 전지현, 김태희 같은 스타를 내세우는 것도 '여심(女心)'을 잡기 위한 노력이다. 박정현 LG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MP3P 등 IT기기는 패션 아이콘으로 뿌리내리면서 소비자들이 동경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면서 "여성이 남성보다 변신욕구가 더 크기 때문에 호응도 더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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