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형저축의 출시를 앞두고 시중은행들은 재형저축의 금리 결정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단독 상품이면 금리를 계산대로 정하면 되지만 은행들이 동시에 판매하는 경쟁상품이기 때문이었다. 첩보전을 연상시킬 정도로 다른 은행의 결정금리를 사전에 알기 위한 노력도 백방으로 펼쳤다. 시중은행의 한 개인금융담당자는 "무턱대고 높은 금리를 책정하기도, 그렇다고 낮은 금리를 내기도 어려웠다"면서 "솔직한 심정은 딱 중간만 하자였다"고 털어놓았다.
눈치작전이 심해서였을까. 재형저축의 금리가 공개되면서 은행권은 물론 개인 고객들도 "예상보다 높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기껏해야 금리가 4% 초반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은 깨졌고 일부 은행은 4.6%까지 금리를 제시했다. 저금리 장기화로 3% 중반대의 적금을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인데 은행들이 4% 중반에 이르는 높은 금리를 내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높은 금리를 줄 수 있는 비결이 따로 있는 것일까.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의 말에는 그 답이 조금이나마 드러나 있다. 그는 "재형저축의 상품구조를 보면 답이 있다"고 말했다. 4% 중반을 제시해도 은행으로서는 역마진이 나지 않다는 얘기다. 은행이 고금리를 주는 '천사'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라는 뜻이다.
◇금리 4% 중반… 비밀은 중도 해지율과 변동금리=은행들이 가장 먼저 주목하는 것은 중도해지율. 10일 금융계에 따르면 A은행이 최근 자체적으로 재형저축의 중도해지율을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가입자의 절반 정도가 도중에 깨는 것으로 나타났다.
A은행의 고위관계자는 "저금리에 예금을 받아도 운용할 데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4% 중반을 주는 것이 당장은 부담"이라면서도 "해지율이 절반에 달할 것으로 보여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비과세에 소득공제 혜택까지 있던 장기주택마련저축의 중도해지율은 40%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A은행의 경우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적금은 해지율이 60%에 달한다.
중도 해약하면 약정 이자에 못 미치는 금리만 제공하면 된다. 국민은행은 재형저축 가입 뒤 1개월 안에 해지하면 0.1%만 적용해준다. 1개월 이상이면 기본이율(4.2%)의 절반에 경과월수를 36개월로 나눈 값을 곱한 것을 해지이자로 준다. 우리은행은 가입기간 3년 안에 해지하면 일반 적금의 중도해지이율을 제공하고 3년이 지나면 기본이자율을 준다. 중도해지시 우대이자율은 적용되지 않는다.
100% 고정금리 상품이 아니라는 점도 초기 높은 금리가 가능한 이유다. 재형저축은 3년 동안만 고정금리가 적용되고 나머지 기간은 변동금리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3년만 고정금리여서 나중에는 은행이 금리를 바꿀 수 있다"며 "재형저축 가입조건이 연봉 5,000만원 이하 근로자 등이어서 결혼이나 내 집 마련 같은 일로 도중에 해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금감원, 완전 고정금리형 등 추진… 업계 "외면될 수도"=이런 상황에서 금융감독원이 '최저금리보장형'과 '완전고정금리형' 등의 재형저축 상품 개발을 추진하기로 해 은행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권인원 금감원 감독총괄국장은 "저축성보험처럼 시중금리가 지나치게 하락해도 최저 이자는 보장받을 수 있는 상품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새로운 유형의 상품은 은행이나 소비자 모두에게서 외면 받을 수 있다고 금융계는 지적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완전고정금리 상품을 만들면 금리가 3.2~3.3%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이런 상품을 검토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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