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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빌 클린턴 전 美대통령 어떤 과정으로 대북 특사 됐나?

유력 후보 앨 고어 고사<br>北측도 원해 최종 낙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어떤 과정을 통해 대북 특사로 최종 낙점됐을까.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처음에는 앨 고어 전 부통령이 대북 특사로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북한의 바람과 미국의 전략적 판단 등이 어우러지면서 결국 클린턴 전 대통령 카드로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대북 특사 파견을 제안한 인물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유력 특사 후보로는 앨 고어를 포함해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존 케리 상원의원 등이 천거됐다. 그 가운데서도 고어는 다른 후보자에 비해 한발 앞선 듯 보였다. 왜냐하면 고어는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계 유나 리와 중국계 로라 링 등 미국인 두 여기자가 소속된 미디어그룹 커런트TV를 공동 설립했기 때문.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로서 두 기자의 무사 송환을 맡길 적임자로 지목된 것이다. 하지만 특사 파견 10일 전 고어는 ‘북한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대북 특사로 원한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클린턴에게 대북 특사직을 맡아줄 것을 요구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가 반대하지만 않는다면 특사 임무를 맡겠다는 의사를 고어에게 전했다. 사실 대북 특사로 클린턴 전 대통령만한 적임자는 없었다. 미 정부 관리에 따르면 김정일 북한 정권은 클린턴 전 대통령을 대북 특사로 보내달라는 의사를 오바마 측에 전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김일성 주석의 사망 당시 조의를 표했을 정도로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북한 정권으로서는 오바마 행정부에 영향력이 있으면서도 북미 관계 측면에서도 어떤 정권보다도 좋았던 클린턴을 선호했던 셈이다. 미국 입장에서도 김 위원장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최대한 예의를 표한 클린턴이 방북한다면 답례차원에서라도 두 기자를 무사히 보내줄 것이란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북미 관계의 극적 전환이라는 모멘텀 차원에서도 클린턴 전 대통령은 최고의 선택으로 손색이 없었다. 클린턴의 북한 방문이 있기 2주 전만해도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냉랭’ 그 자체였다. 지난 7월 말에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미국 측 대표로 참가한 힐러리는 북한의 핵 도발을 ‘어른에게 관심을 끌려는 십대의 객기’로 묘사하면서 북한을 자극했다. 북한도 힐러리의 발언을 ‘예의 없는 초등학생 수준의 발언’이라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으로 간다면 매우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북한과 미국 정권 모두에 있었다는 것이다. 힐러리가 아프리카를 순방 중인 상황에서 남편인 클린턴은 대북 관계의 물꼬를 트는 그런 극적 효과를 원했던 것이다. 물론 힐러리로 촉발된 대북 관계 악화가 미 정부로 하여금 리처드슨 등을 새로운 대북특사 후보로 올리도록 만들었지만 오바마는 결국 클린턴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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