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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5월 12일] 시대의 거울, 예술

분명 충무공 이순신을 그린 그림이라는데 이순신 장군 같지가 않다. 망국의 근심과 항일의식을 담긴 했다지만 중국 무협소설의 삽화 같은 형태나 색채는 만화 같은 느낌을 풍기며 기법적 한계를 드러낸다. 또 다른 그림을 본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달빛 아래 잠든 개를 그린 '월하수구(月下睡拘)'는 평화로운 반면 무기력한 자세에 넋 나간 듯한 표정이다. 조선왕조 마지막 도화서 화원인 심전 안중식(1861~1919)과 소림 조석진(1853~1920), 당대 최고의 실력파로 숱한 명작을 남긴 이들이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붓마저 휘청인 것이다. 간송 전형필이 일제시대 때 사재를 털어 유실될 뻔한 문화재들을 사모아 건립한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은 평상시에는 비공개지만 매년 봄ㆍ가을에 보름씩 소장품을 전시한다. 국보급 작품을 선보이는 예년 전시와 달리 '조선 망국 100주년 추념(追念) 서화전'이라는 이름 아래 마련된 화가 28명의 100여점 작품은 완성도보다는 혼란기의 시대상을 투영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 학예실장은 "예술, 특히 그림은 한 시대의 문화역량을 총체적으로 반영합니다. 경술국치이던 지난 1910년의 화단에는 알게 모르게 국망기(國亡期)의 암울함이 드리웠습니다. 전통을 지키려는 의지와 새로운 기법 모색의 한계 사이에서 갈등했고 고뇌와 절망, 참여와 은둔의 복잡함이 그대로 반영됐죠"라고 설명했다. 요즘의 미술시장은 돈의 논리에 화풍이 들썩인다. 한동안 꽃 그림이 유행했고 '하이퍼 리얼리즘'의 극사실적인 묘사 작품이 넘쳐났다. '팝아트'가 대세라고 하니 너도 나도 앤디 워홀이나 무라카미 다카시를 흉내 내고 있다. 물론 이 중에도 상당수 독자적 화풍을 고집하는 작가가 있지만 안목이 아닌 '뜰 것 같은 투기성 작품'을 찾아다니는 컬렉터들에게 외면당하기 일쑤다. 전시는 과거 작품을 완상하는 즐거움을 넘어 오늘날의 우리가 어떤 시대에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반추하게 한다. 기술 문명과 개발논리에 지나치게 휩쓸리지는 않는지, 미국 스타일, 일본풍, 중국바람 등에 너무 의존하지는 않는지 반성하게 한다. 예술은 때로 내가 어떤 삶의 자세를 갖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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