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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담보 대출/김승유 하나은행장(기업인 문화칼럼)
입력1997-09-13 00:00:00
수정
1997.09.13 00:00:00
김승유 기자
25년 전쯤의 일로 기억된다. 주말이면 가장 경제적인 취미 생활로 화랑가를 다니며 그림을 감상하곤 했었다.입장료를 받는 곳도 없고 일하던 사무실에서 가깝고 해서 관훈동, 인사동 거리를 자주 거닐었다. 그러던 중 어느 화랑에서 6·25 동란 중 작고한 이모화백의 8호 크기의 그림에 매료되었다. 그 그림 앞에 한참 동안 서 있기를 몇 주째, 용기를 내어 그림값을 물어 보니 당시 내 월급 3개월치에 상여금을 합친 금액과 맞먹어 쉽게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그러기를 또 몇 주, 처음 그 그림과 상면한 지 약 3개월 후 큰 마음을 먹고 사기로 결정하고 가 보니 며칠 전 다른 임자를 만나 팔려 가고 없는 것이 아닌가. 나하고는 인연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잊어버린 지 몇 년 후, 우연히 인사동의 다른 화랑에서 바로 그 그림을 다시 보게 되었다. 어렸을 적에 혼자 짝사랑하던 동네 여학생을 다시 만난 기분이라 할까?
이번에는 꼭 손에 넣어야지 하고 값을 물어 보니 이게 웬 일인가. 몇 년전 값의 열 배나 올랐고 그것도 그림주인이 화랑에 판매를 부탁하면서 한푼도 깎아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사이 월급이 꽤 오르기는 했어도 2년치 연봉과 같은 금액이었으니 그 그림을 산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에나 그려 볼 일이었다. 그 후부터는 그림값이 너무 올라 우리 같은 월급쟁이들은 그림 살 생각은 아예 하지 않게 되었으니 오히려 마음의 갈등 없이 편하게 그림 앞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과천 현대미술관에서는 독일 기업가 「라인홀트 뷔르트」가 30년 이상 열성적으로 수집한 작품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우리가 평소 보기 힘든 그림을 감상할 기회를 주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기업이나 기업가들은 좋은 작품을 수집하고 그것을 공개함으로써 미술 애호가들을 기쁘게 할 뿐만 아니라 미술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예가 많다. 우리 나라의 많은 기업가들도 미술품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으나 일부는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시내 곳곳에 전시 공간이 생겨나고 있는 요즈음 일년에 한 번 쯤은 각 기업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모아 일반애호가들에게 공개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하나은행에서는 미술품 소장가들을 위한 조그만 서비스의 하나로 미술품담보 대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되지만 일시적으로 급전이 필요할 때 자기가 아끼는 작품을 시집보내야 되는 아픔을 갖지 않고 필요한 만큼 융통할 수 있으며 소장품에 대한 자산의 유동성도 확보해 줄 수 있으니 미술애호가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미국의 은행들은 이미 취급하고 있어 새로운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미술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템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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