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중국 우화가 있다. 우공이라는 노인이 높은 산에 가로막혀 오가기가 불편하자 직접 산을 옮기기로 했다. 누가 보더라도 불가능한 일이라 친구가 말리자 "대를 이어 하다 보면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라고 우공은 대답했다. 결국 그 정성에 감동한 옥황상제의 도움으로 노인은 뜻을 이룰 수 있었다는 얘기지만 우화는 우화일 뿐 실제의 경제·사회문제에선 '우공이산' 방식의 해결은 어림도 없다. 최태원 SK 회장이 쓴 책 '새로운 모색, 사회적기업'에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이 읽혀진다.
최 회장은 '사회적기업'에 관심이 유별나다. 10여년 전부터 사회적기업 역할론을 부단히 강조하며 간접 지원하더니 사회적기업사업단을 직접 꾸리고 물품구매대행 계열사를 '행복나래'라는 사회적기업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이어 지난해엔 사회적기업가 발굴을 위한 회사 설립에 사재를 출연하고 얼마 전에는 '사회성과인센티브 추진단' 출범을 주도하는 등 옥중에서 활동이 외려 활발하다. 재계 3위 그룹의 회장으로 이윤추구를 최고의 목표로 삼아야 할 사람이 공익을 추구하는 사회적기업에 눈을 돌리다니 외도가 아닌가. 이에 그는 "나는 새로운 접근을 통해 증폭되는 사회 문제를 제어할 수 있는 사회를 꿈꿔본다"고 답한다.
공익과 이윤추구라는 목표가 혼합된 비즈니스모델은 결코 허상이 아니다. 영국의 '빅이슈'라는 잡지는 홈리스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미국의 '주마 벤처스'는 비행 청소년을 고용한다. 우리나라에는 농촌의 독거노인이나 장애인에게 무료나 저가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청람사회복지회와 환경개선을 목표로 한 미래자원·다산환경 등이 있다. 사회적기업을 통해 사회문제를 제어한 사례는 이외에도 많다.
어쩌면 기업이 사적이윤만을 목표로 삼아서는 비즈니스의 생존 자체가 어려운 세상이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최근 저서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3D프린터와 사물인터넷(IoT)이 보편화된 사회에서는 누구나 제로 수준의 한계비용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면서 공유경제가 시장경제를 점차 대체해나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민박 공유서비스인 '에어비엔비'와 '우버택시' 등이, 국내에서는 홈셰어링과 카셰어링이 영역을 확대해나가는 추세다. 더 나아가 리프킨은 "소유 중심의 교환 가치에서 접속 중심의 공유 가치로 옮겨 가는 대전환이 새로운 경제 시대를 이끌 기술적·사회적 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미래사회의 변화추세를 이해하기 위해 어느 정도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주장이다.
사실 기업의 공익적 가치 추구라면 한국 기업에도 오랜 내력이 있다. 삼성의 반도체사업 진출도 현대의 국산자동차 포니 생산도 주변의 조롱과 반대가 극심했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기업의 안정적인 이윤창출에 유리하지 않겠냐는 유혹도 컸다. 그럼에도 삼성의 이병철과 현대의 정주영이 과감한 도전을 선택한 것은 새 길을 개척하지 않고는 경제 후진성은 물론 국민의 빈곤을 탈피할 수 없다는 사회의식과 각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LG와 SK가 안팎의 반대와 위험을 무릅쓰고 전자사업과 정유사업에 뛰어든 것 또한 사적 이윤추구만을 고려했다면 실행이 가능했을 리 없다.
그래서 숱한 사회 문제에 짓눌려 있는 지금 우리 기업인들에게 선대 기업가들의 지혜가 더욱 아쉬운 것이다. 사적 이윤과 공익적 가치를 조화시켜 한국 경제를 도약시킨 선대의 혜안과 실행력을 본받는다면 우리 앞에 가로놓인 경제의 '저성장·저고용'이라는 산이 아무리 크다 해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 여기에 정부와 국민의 조력이 더해져야 함은 물론이다. 국민·정부의 지지 속에 도전정신으로 충만한 기업가들이 맘껏 뛰는 모습을 이 봄엔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문성진 논설위원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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