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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진단] 投信 부실의 책임

세상살이의 최소한의 룰(rule)을 규정한 민법(民法)의 뼈대는 '신의성실의 원칙'이다. 신의칙(信義則)이라고도 한다.신의성실이란 사회 공동생활의 일원으로 서로 상대방의 신뢰를 배반하지 않도록 성의를 갖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사회는 무질서해지고 온갖 불신과 반목이 만연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 신의칙이 무너지고 있다. 특히 정부의 정책은 불성실하기 이를데 없고 불신감만 조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투자신탁회사의 대우채 지원 문제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투자신탁회사의 대우채 편입은 사실 정부의 반강제에 의한 것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체제에 있던 지난 99년 정부는 대우의 부실 문제가 불거져 환매(還買ㆍ예금인출)사태가 일자 금융시장의 교란을 막기 위해 투자신탁회사에 뒷돈을 대주며 대우채를 사도록 했다. 투자신탁회사들은 사태가 워낙 화급하다 보니 '10% 룰(신탁재산에 한 종목을 10% 이상 편입할 수 없도록 한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대우채를 상품으로 떠안았다. 정부는 당시 "투신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그냥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관리들의 '빈말'일 뿐이었다. 이후 대우채 문제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당시 투자신탁회사 사장들은 물론 '사건'에 개입했던 임직원들은 검찰에 불려가 "왜 부실채권을 인수했느냐"며 추궁당한 것은 물론 예금보험공사로부터 평생 모은 재산을 압류당하고 거리로 나앉았다. 정부의 말을 믿은 게 화근이었다. 정부가 확인서를 써주지 않았고 또 받지도 못했으니 검찰에 불려가도 '무죄'를 입증할 근거가 없었다. 그들은 요즘 화병에 걸려 있다. 더욱 우스운 일은 대우채 문제의 원인제공자인 금융감독원이 '10% 룰'위반의 책임을 전적으로 투자신탁회사에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은 금융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10% 룰'을 어긴 피해를 보상하라고 결정했다. 이 같은 결정이 나자 해당 투신사는 '불가항력적인 조치였다'며 정부의 책임을 간접적으로 내비쳤으나 정작 기자설명회에서는 '자신들의 책임'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무언의 압력이 행사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자신들의 잘못을 회피하는 것은 물론 정책실패에 따른 피해도 민간기업에 떠넘기고 있다. 서울보증보험의 투신사에 대한 지급보증 대지급 문제가 그렇다. 투신사들은 98년 대우그룹이 부도나기 전 서울보증보험의 보증을 받고 7조2,800억원의 대우채를 떠안았다. 이 가운데 5조6,000억원은 올해 말까지 받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기관인 서울보증은 당연히 갚아야 할 1조6,800억원에 대해 일부는 차환 발행하겠다고 하고 이자는 둘째치고 원금도 깎아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실상 정부가 보증을 서놓고 원리금을 다는 못 갚겠다는 얘기다. 투자신탁 문제는 정부가 얼마나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낸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일단 일을 벌여놓고 문제가 되면 민간기업과 국민에게 덤터기를 씌우는 일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국민의 정부'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민간기업의 경영자는 경영을 잘못하면 옷을 벗는다. 그러나 시민의 공복이라는 관리들은 어떠한가. 스스로 반성해볼 문제다. "주범(主犯)과 교사범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거리를 활보하면서 종범(從犯)만 족치고 철창에 보내는 꼴"이라는 전직 투자신탁 임원의 절규를 정부는 귀담아들어야 한다. 김희중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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