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구멍뚫린 금융사 지배구조-칼 빼든 당국] <2> '제왕적 회장'의 탐욕

시시콜콜한 인사까지 감놔라 배놔라… '은행장 위의 은행장'<br>투자도 일일이 간섭… 문제땐 나몰라라<br>계열사 대표 경영책임만 묻는 구조돼야

금융당국 수장과 지주 회장들이 지난해 8월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간담회를 갖기에 앞서 기념촬영 시간을 갖고 있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당시 개인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고 민병덕 국민은행장이 대신했다. /서울경제DB


A금융지주는 최근 인사에서 회장이 승진 명단을 바꿨다. 보통 부서장을 제외한 대리나 과장ㆍ차장 같은 일반 직원들은 임원이 전결하거나 내용을 확정한 뒤 사인만 받는 구조다. 회장이 최종 인사권자이기는 하지만 관행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시시콜콜한 인사까지 회장이 챙기는 셈이다.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은행장 위의 은행장' 역할을 하면서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 금융관료는 "심하게 표현하면 우리나라의 지주 회장들은 자신들이 이건희 삼성 회장처럼 오너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고까지 표현했다.

실제로 '왕회장'으로 불렸던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물러나면서 예전처럼 지주 회장들이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던 때는 지났지만 여전히 상당 부분에서 필요 이상의 권한을 회장들이 행사하고 있다.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는 우리금융지주를 제외하면 주요 금융지주사들의 회장은 장기성과급까지 포함하면 많게는 연 15억~20억원을 받는다. 1만~2만명을 거느리는 거대한 조직의 수장이기 때문에 각종 물품구입이나 사회공헌 등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더 크다. 금융계의 한 고위인사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금융지주 회장은 은행 등 계열사에 상왕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며 "권한을 명확히 구분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 등 계열사에 지나친 간섭=B금융지주는 현재 은행의 해외진출 업무를 지주사에서 사실상 다 챙기고 있다. 해외에 점포를 내는 것과 인수합병(M&A)까지 지주사에서 판을 다 짠다. 은행 실무진은 구체적인 내용에서 배제돼 업무진행 상황조차 모를 때가 많다. 계열사의 일을 지주사가 챙기는 것이 맞지만 은행의 해외진출은 은행 고유업무다. 그런데도 업무협의 등을 이유로 간섭을 하는 것이다. 금융감독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한 은행의 경우 해외 금융사에 투자를 했는데 정작 투자주체인 은행에서는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며 "지주에서 모두 했기 때문인데 결국 책임은 은행이 지는 것 아니냐"고 전했다.

금융권에서는 C금융지주가 지주 차원에서 은행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C지주가 매트릭스 조직 도입을 추진하는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라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매트릭스 조직은 은행 결재라인 외에도 부문별로 장을 만들어 여기에서도 결재를 받아야 한다. 지주 입장에서는 매트릭스 조직 도입시 회장의 권한이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

은행의 투자업무에도 지주 회장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다. 밑그림은 지주에서 다 짜고 실제 집행은 은행에서 하는 것이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지주 회장들은) 은행의 투자 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은행장 책임 아래 은행이 해야 할 일을 지주에서 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회장의 권한은 퇴임 후에도 이어진다. 일부 금융지주는 회장이 물러난 뒤에도 한동안 퇴임 회장이 아직도 권한을 행사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D금융지주의 경우 전임 회장 측 인사만 중용되고 일부 반대파 인물들은 인사시 배제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돈다.

퇴임 회장의 그림자는 실제로도 증명된다. 2010년 11월 '신한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라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10월까지 신한장학재단 이사장직을 유지했다. 무려 2년 가까이 신한 관련 조직에 더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

금융지주의 자회사 경영 관여는 일정 부분 필요하다. '금융지주회사의 그룹 내부통제기준 모범규준'에 따르면 지주회사는 자회사 등 조직구조의 적정성을 점검하고 구조개선을 권고할 수 있다. 또 자회사와 지주회사 간 효율적인 지휘ㆍ보고체계를 만들도록 돼 있다.



문제는 지주가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거나 지나치게 경영에 일일이 간섭할 때다. 특히 공식문서가 아닌 간접지시 등은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사실상 없다. 금융감독당국 고위관계자는 "그룹 리스크 관리와 관련해 금융지주회사와 자회사 등의 역할과 책임을 문서화하도록 해 책임을 안 지는 부분을 보완하도록 하고 있다"면서도 "지주 회장이 지주사나 계열사 임원을 통한 간접지시나 인사관여는 우리 정서상 사실상 막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경영책임만 묻는 구조로 가야=당초 금융지주사는 카드 사태 때처럼 계열사의 부실이 은행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그룹 차원에서 은행에 비해 발전속도가 처질 수밖에 없는 증권이나 보험 같은 비은행 계열사를 키운다는 목적도 있다.

이런 도입 목적을 제대로 구현하고 과도한 지주 회장의 권한행사를 막기 위해서는 금융지주사가 계열사 대표 등에 경영책임만 묻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은행이나 카드사 등에 경영목표를 주고 목표수준에 미달하면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어 성과급을 깎거나 최악의 경우 물러나게 하면 된다는 얘기다. 계열사의 인사나 투자정책ㆍ운용방향 등은 큰 차원에서 협의는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계열사 대표에게 맡겨야 한다는 뜻이다.

은행장과 회장직을 겸직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금융지주 차원에서 은행이 주력 계열사이다 보니 지주 회장은 은행 경영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차라리 은행장과 회장직을 겸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우리금융지주는 은행장과 회장직을 분리운영하다가 황영기 전 회장이 오면서 겸직체제로 갔다. 회장과 행장의 분리에 따른 문제점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지주회사가 필요 없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과거처럼 은행의 자회사 구조로 계열사를 거느리면 된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지주사는 계열사를 지원해주기 위해 만든 곳인데 지금은 거꾸로 지배하면서 필요 없는 일만 만드는 조직이 됐다"며 "지주 회장이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막으려면 경영책임만 묻는 구조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