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노조의 독립경영을 보장하면서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 간 협상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2·17 합의서'가 금융 당국의 책임의무를 지닌 '노사정 합의서'가 아니라 단순한 '노사 합의서'에 불과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이 경우 금융위원회의 책임이행의무는 사실상 없어지게 돼 교착상태인 하나금융과 외환 노조 간의 협상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설지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3개월째 장외투쟁을 지속하고 있는 외환은행 노동조합에 대한 내부의 불만 어린 목소리는 조금씩 커지고 있다. 정족수 부족으로 무산된 지난 3일 임시 조합원총회가 내분의 결정적 씨앗이 됐고 여기에 사측의 대규모 중징계 방침이 겹쳐지면서 책임론을 두고 분열이 가속화하고 있다. 노조원들 사이에서는 하루빨리 경영진과의 대화에 나서라는 주문이 잇따라 분출하고 있다. 노조 집행부도 이제 변해달라는 것이다.
◇"2·17 합의, 노사정 아닌 '노사 합의서'"…협상 새 국면=외환은행 노조는 5년간 독립경영을 이행해야 하는 이른바 '보증책임'을 금융 당국이 지니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합의서 작성 당시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당국 대표로 '보증'을 섰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2·17 합의서에 대해 외환은행 노조의 주장과 다른 유권해석이 나와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노조는 외환은행 독립경영 5년을 보장한 2·17 합의서는 엄연히 노사정 합의서이며 조기통합은 '정(금융 당국)'의 동의가 필수적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법무법인 태평양은 최근 2·17 합의서는 노사정이 아닌 하나금융지주, 외환은행, 외환은행 노조가 서명한 노사 합의서이며 금융 당국은 계약 당사자가 아닌 '입회인'에 불과해 권리의무를 전혀 규정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같은 판단이 맞을 경우 노조로서는 운신의 폭이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고 협상 테이블을 회피할 명분도 줄어들게 된다.
◇정치세력화에도 반발=노조 집행부의 정치세력화 시도에 대한 반감도 생기고 있다. 노조집행부의 잇따른 소송 제기와 정치권 등 외부에 기대는 투쟁전략에 대해 회의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외환 노조는 2010년 이후 총 38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 중 외환 노조가 승소한 사례는 단 한건도 없고 24건이 각각 패소·기각·무혐의 처리됐다. 외환카드 분사 중지 가처분신청, 주식교환 무효소송 등 통합과 관련된 소송 역시 각각 기각·패소 판결을 받았다. 여기에 김재기·허준·홍세표 등 전 외환은행장 3인을 대표로 청와대에 낸 청원서는 접수조차 거부됐다.
하나금융의 한 고위관계자는 "노조는 노사정 합의라는 이유로 협상 테이블을 거부하고 있는데 조기통합 논의는 내부에서 풀어나가야지 외부세력에 기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노조원, "집행부 변해달라"=18일 외환은행 노조는 임시 전국대의원대회를 열었다. 사측의 징계 방침을 저지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사측은 9·3 임시 총회에 참석한 898명의 직원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진행하고 있다. 임시 전국대의원회의는 결과적으로 9·3 임시 총회의 반복이 되고 말았다. 내부직원들 간 불신과 갈등을 키우는 부작용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임시 전국대의원회의 이후 외환은행 직원 게시판에는 노조 집행부를 성토하는 주장이 잇따라 게재됐다. 한 노조원은 "조합원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징계를 막아달라고, 동료들의 생계를 지켜달라고 주장했지만 노조위원장은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고 두려움을 떨쳐내라고 말했다"며 "그러나 대화의 장에 나가면 무조건 진다고 생각하는 두려움은 누가 가졌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노조원은 '(임시 전국대의원대회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휴대폰을 빼앗고 고성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는 가장 비민주적인 대회 진행에 분통을 금할 수 없다"며 "지금 직원들이 원하는 것은 당당하게 경영진과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피해직원들을 구하고 난국을 헤쳐나가는 길임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일반 노조원들 사이에도 집행부의 고집스러운 대응에 대한 회의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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