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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낮춰 '미국 셰일 죽이기'… 사우디의 위험한 도박

경기침체로 원유 소비 줄었지만 셰일가스·남미 심해유전 견제 위해<br>가격 하락 용인·산유량 고수… 걸프 산유국도 동참 의사 밝혀<br>IEA, 원유 수요 전망치 낮춰 유가 곤두박질… 80弗선 위협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국제유가가 급락하는 상황에도 가격하락을 용인하고 생산량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산유국들 사이에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우디가 자국의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미국의 셰일가스나 남미의 심해원유 등을 고사시키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1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원유시장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다음달 열리는 긴급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도 감산을 결정할 의지가 없다고 내다보고 있다. 최근 유가가 급락하면서 재정위기에 처한 베네수엘라는 등 일부 OPEC 회원국은 감산을 요구하며 다음달 27일 긴급 OPEC 회의를 소집한 상태다.

그러나 과거 유가 급락 때마다 산유국의 '맏형' 노릇을 하며 감산에 앞장섰던 과거와 달리 사우디는 감산은커녕 추가 하락을 용인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13일 로이터는 최근 뉴욕에서 사우디 관료들과 만난 주요 투자자 및 애널리스트의 말을 인용해 "사우디는 향후 1~2년간 브렌트유 기준 배럴당 80~90달러선까지도 유가하락을 용인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이 같은 사우디의 선택은 지정학적 요소를 고려한 전략이 깔린 것이라는 관측이 잇따라 제기됐다. 중동의 맹주 자리를 놓고 다투는, 원유 생산단가가 높은 이란을 파산시키려 한다거나 우방인 미국의 골칫거리인 러시아의 재정난을 가중시켜 미국과의 안보동맹을 강화하려 한다는 관측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사우디의 치킨게임은 유가하락 시기에 미국 셰일가스 등 경쟁 대상을 고사시켜 중장기적으로 유가상승을 유도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사우디 소식통은 "미국의 셰일가스와 남미의 심해유전 투자를 억제해야 중장기적으로 국제유가를 높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 낮은 유가를 고수할 필요가 있다"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사우디의 튼튼한 재정도 출혈경쟁을 할 수 있는 큰 요인이다. 사우디의 2013년 기준 균형재정 달성 유가는 89달러다. 현재 유가가 이미 위험한 수준에 와 있지만 지난 수년간 고유가 시대에 쌓아둔 7,47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이 있어 단기간 적자재정도 흡수 가능한 상태다.

또 섣불리 유가 떠받치기에 나섰다가 시장 점유율만 떨어지는 패착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다. 실제로 사우디는 1980년대 북해유전 발견 등으로 유가가 급락하자 1985년 일일 원유 생산량을 75% 감축하며 가격 떠받치기에 나섰다. 그러나 유가가 추가 하락하며 이후 16년간 사우디는 재정적자에 시달렸다.



걸프 산유국들도 사우디를 거들고 나섰다. 쿠웨이트 에너지장관은 76달러선까지 용인 가능하다고 밝혔으며 생산단가가 높아 고유가를 고집해온 이란도 최근 입장을 바꿔 유가가 하락해도 견딜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FT는 "걸프 산유국들은 2009년 배럴당 34달러였던 저유가 시대도 견딘 경험이 있다"며 "이번에도 단기 유가하락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사우디가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미국 셰일가스의 채산성이 갈수록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켓워치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사우디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선을 하회할 경우 셰일가스 업체들의 채산성이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하지만 75달러 이하에서도 미국 원유 업체들은 생산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우디 내부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알왈리드 빈탈랄 알사우드 왕자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의 유가인하 용인 발언에 경악했다며 그의 유가정책이 사우디 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게다가 국제유가 하락은 엉뚱하게도 미국 내에서 원유수출 금지 해제를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로이터는 원유수출 완화를 촉구하는 공화당의 의회 내 입지가 강화되고 원유 기업들의 로비도 여론의 지지를 받기 쉬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FT 등 외신들에 따르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월간 보고서에서 올해 글로벌 원유 수요가 지난해보다 하루 70만배럴 늘 것으로 예상했다. 종전 전망치 92만배럴에서 22% 감소한 것이다. 반면 원유 공급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달 OPEC 회원국들의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은 1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OPEC 비회원 산유국들의 지난달 하루 원유 생산량도 210만배럴 늘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제유가 하락세에 가속이 붙었다. 이날 영국 런던 ICE선물시장에서 북해산브렌트유는 배럴당 4.3% 급락한 85.04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10년 말 이후 최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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