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을 받으면 그에 상당한 벌이 주어지며, 이득을 취하면 그에 상당한 세금 부담이 생기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최후에 가서는 자기가 지은 집의 수효가 승부의 척도가 되는 것이 바둑이고 보면 이득인 집을 벌고 또 버는 것이 지당하고 현명한 일인데…. 그것을 밝히면 어떤 식으로 후유증이 남는가를 이 바둑이 너무도 여실히 보여 준다. 왕레이가 두어 치운 흑79와 81의 이 수순. 분명히 선수이득이긴 한데 이것 때문에 흑진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생겼다. 백이 가로 끊는 강수를 노리게 된 것이다. 물론 당장은 축이므로 그 절단수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결정적인 수단을 노리면서 좌하귀의 백의 살자고 하는 갖가지 술책의 가능성이 생겼다. 조훈현은 왕레이가 실전보의 흑79, 81로 자충형을 만드는 것을 보고 승리의 예감을 느꼈다고 국후에 말했다. 한편 왕레이는 왕레이대로 계산서를 뽑아놓고 있었다. 좌하귀에 약간의 뒷맛이 남아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집은 흑이 많다. 패로 살려주고 다른 곳을 연타하면 승리는 따놓은 당상. 이렇게 믿었던 것. 그러나 그는 바둑황제 조훈현이 얼마나 원대한 책모를 꾸미고 있는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왕레이가 99로 패를 집어넣었을 때 조훈현은 그 한 점을 따내는 대신 전혀 엉뚱한 곳을 두었다. 100으로 한 점을 살려낸 것. 왕레이는 이게 도대체 무슨 해괴한 수인가 하듯 한참 눈을 껌벅이며 검토하더니 낯빛이 변했다. 명경지수와 같은, 천년고목과 같은 부동심을 자랑하던 왕레이가 비로소 그 수의 깊은 뜻을 깨달았다. 거대한 흑대마가 아직 두 눈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노승일ㆍ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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