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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도 모른 의원
입력2004-02-10 00:00:00
수정
2004.02.10 00:00:00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해 5시간 가량 우여곡절을 겪은 지난 9일 국회 본회의.
기자는 이날 본회의에서 이미 두 차례나 실패한 비준안 처리를 어처구니없는 일로 또다시 무산시킨 광경을 지켜보면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는 국회의원들이 국회법조차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표결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중대한 국가사안을 결정하는 국회의원들의 자질이 이래서야 제대로 된 대의민주정치가 이땅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국민들이 정치권을 믿고 국가의 장래에 희망을 걸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회의가 들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FTA 비준안 처리에 앞서 비준동의에 관한 17명의 열띤 찬반토론을 벌여 그 어느 때보다 비준안 처리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박관용 국회의장의 미숙한 의사진행과 의원들의 국회법 몰이해로 곧바로 실망으로 바뀌었다. 박 의장은 찬반토론이 끝나자 비준안에 대한 무기명투표안과 기명투표안이 제안돼 대립하고 있다며 투표방식을 표결에 부쳐 결정하겠다고 선언했다. 무기명투표는 지역구민들을 의식하지 않고 소신껏 투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찬성파 의원들이 선호한 방식이다. 반면 기명투표는 투표자의 실명이 드러나 찬성표를 던지는 데 부담을 줄 수 있어 농촌 출신의 반대파 의원들이 요구한 방식이다.
박 의장은 무기명투표방식이 표결에서 부결되자 기명투표방식을 표결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비준안 처리에 반대하는 농촌 출신 의원들은 무기명투표방식이 부결됐기 때문에 표결하지 않고도 기명투표방식이 채택됐다고 주장하며 기명투표방식에 대한 표결을 저지했다. 박 의장은 이때 표결방식을 규정한 국회법 112조2항을 지적하며 기명투표방식과 전자투표방식의 차이점을 설명하지 않은 채 기명투표방식을 표결에 부쳐 가결시켰다. 그러나 가결된 기명투표방식을 전자투표방식으로 잘못 생각한 농촌 출신 의원들은 일제히 반발하며 단상으로 뛰어나왔다. 기명투표는 투표용지에 투표자의 성명과 가부의견을 표시하는 것이고, 전자투표는 의석에서 버튼을 눌러 찬반의사를 표시하면 즉각 본회의장 전광판에 찬성ㆍ반대의원 명단이 확연히 드러난다. 두 방식 모두 찬ㆍ반의원이 누구인지 드러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전자투표는 의원들의 기표상황이 시시각각 전광판에 나타나 기표가 끝난 후 찬ㆍ반의원 명단이 공개되는 기명투표보다 투표에 더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어쨌든 진통을 겪어온 비준안 처리가 결정적인 기회를 맞이하고도 절차문제로 또다시 무산된 점은 대단히 아쉬운 대목이다.
<구동본 기자 <정치부> dbko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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