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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12월31일] 동인도회사


1600년 12월31일, 영국 동인도회사(HEIC)에 대한 칙허장이 내려졌다. 엘리자베스 1세가 동양 무역을 독점할 합자회사 설립을 허가한 목적은 후추 공급선 확보.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후추무역으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데 자극받았다. HEIC는 처음부터 성과를 거뒀다. 첫 출항에서 국내 총수요의 4배가 넘는 후추 103만파운드를 싣고 돌아와 국왕의 칙허장으로 먼저 설립된 다섯개 회사의 실적을 단숨에 넘어섰다. 성장세에 탄력을 붙여준 결정적인 계기는 전쟁. 세차례 영란전쟁으로 영국이 네덜란드 세력을 누른 뒤부터 후추무역은 물론 인도산 목양목(캘리코면) 수입에서도 경쟁국들을 따돌렸다. 자본금이 10배나 많았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영역도 잠식하며 런던 주식거래소에서 최고의 주식으로 떠오른 HEIC는 자체 군대까지 거느리는 괴물로 커졌다. 동인도회사군은 프랑스와 전쟁에서도 승리를 따내 인도 지배권을 굳혔다. HEIC가 수익을 낼수록 인도는 병들어갔다. HEIC로 인해 확산된 영국의 상업혁명이 산업혁명으로 이어진 뒤 기계로 뽑아내는 영국산 면직물이 들어와 한때 유럽을 주름잡았던 인도의 전통면직산업도 무너지고 1,500만명이 굶주려 죽었다. 압제에 항거했던 세포이항쟁(1857년)이 짓밟힌 후에는 식민지로 전락했다. 미국의 독립과 아편전쟁에도 HEIC의 흔적이 묻어 있다. HEIC의 이익을 위해 홍차를 식민지에 강매하려던 영국의 욕심이 ‘보스턴 차 사건’을 낳았고 중국과의 아편전쟁 역시 HEIC의 수지 보전 차원에서 비롯됐다. 칙허장이 떨어질 무렵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인도는 왜 HEIC의 분탕질에 녹아났을까. 부패 탓이다. 태수며 영주 같은 지도층이 HEIC의 뇌물에 현혹돼 교역권과 조세권을 하나씩 하나씩 넘겨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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