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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가족 친화 사회가 필요하다

정년 후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도서관에 다니던 스고우치. 어느 날 그는 비슷한 처지의 기리미네를 만나 회사 시절 추억을 나누다 급기야 '주식회사 놀이'를 설립하고 역 앞 찻집을 사무실 삼아 회사놀이를 시작한다. 주 6일 근무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건 기본이고 진짜 회사처럼 회의에 주 3일 야근식까지. 회사놀이는 퇴직한 남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얻으며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대돼 간다. 존재감도 권위도 잃은 가장들 최근 출간된 일본 소설 '극락 컴퍼니(하라 고이치 지음)'의 줄거리다. 퇴직 후 유유자적하는 생활에 익숙지 않은 아버지들이 결국 '다시 한번 회사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갈망 아래 회사놀이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일본 서점가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화제가 됐다는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주인공 이름만 빼면 영락없는 한국 가족들의 이야기였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아버지들은 퇴직을 해도 제대로 할 줄 아는 것 없고 시간 보낼 줄도 몰라 회사놀이로 삶의 정체성을 찾는 회사형 인간이다. 평생 회사 생활에만 전력 질주해온 이들은 회사에만 익숙할 뿐 집에서는 과거 가장의 권위나 존재감이 없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다소 섬뜩한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의 모든 꿈을 먹고 자란 큰아들 친구처럼 의지했던 큰딸 평생 살림의 책임을 떠안기며 밖으로만 돌던 아버지 등이 엄마의 부재를 통해 쏟아낸 아픈 가족사다. 온전히 자식들만을 위해 살았던 엄마의 존재가 사라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가족들은 엄마도 한 사람의 여자이고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엄마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다. 하지만 '과연 엄마도 가족들에게 돌아오고 싶을까'라는 물음에는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이들 소설과 마찬가지로 한국 가정도 사실상 위기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가속화된 가족 해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용돈을 안 준다며 30대 아들이 홧김에 아버지를 살해하는가 하면 생일상을 차리던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살해했다. 치매와 암 투병에 시달리던 노부부는 자식들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다며 동반 음독 자살했다. 모두 올해 5월에 벌어진 사건들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생존 경쟁 속에서 바깥 세상에서는 전쟁을 벌일지언정 집으로 돌아오면 가정이 쉼터 역할을 해주고 내일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줘야 하는데 가정마저 점차 경쟁과 스트레스의 연장선상에 놓이게 된 탓이다. 그저 회사밖에 모르는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외면당하면서 설 자리를 잃는다. 어머니도 옛날보다 권력이 커졌다지만 커진 권력이 결코 건전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재테크도 성공하고 남편도 출세시키고 아이들도 좋은 학교에 진학시키는 슈퍼우먼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엄마는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간 큰 남자' 시리즈나 '연령대별 아줌마'를 비하하는 유머가 확산되는 요즘 상황은 엄마의 커진 권력이 결코 가정의 행복과 평화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음을 반영한다. 가정이 건강해야 국가도 건강 아버지ㆍ어머니가 가정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면 아이들은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최근 한 통계에 따르면 중ㆍ고등학교 학생 10%가 가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이들의 가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정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가출 학생 60% 가량이 부모의 이혼ㆍ별거ㆍ사망 등 가족 해체를 경험했다고 한다. 여성가족부는 사회구조가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가족친화적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기치 아래 정부부처나 공공기관ㆍ민간기업들을 대상으로 유연근무제 시범 운영, 가족친화기업 인증제 등을 도입하고 있지만 이제 걸음마 수준이다. 가정이 세상의 중심이다. 가정이 대화와 소통의 기능을 회복해 정신 근력을 강화시켜 줘야 학교도 사회도 국가도 건강할 수 있다. 가족친화 기업만이 아닌 가족친화 사회가 필요하다. 그래야 불안한 사회를 미연에 방지해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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