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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메주는 콩으로 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사실상 정치적 탄핵을 받았다. 따라서 남은 임기 동안 갈등적 이슈에 더 이상 손대지 말고 비갈등적 이슈, 합의가 충분히 되어 있는 일상적 관리수준의 것만 다뤄야 한다. 그게 국민의사에 순응하는 것이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지난해 9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때의 느낌은 지나치다는 것이었다. 일상적 관리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새 일을 하지 말라는 뜻 아닌가. 최 교수는 대표적 진보개혁 지식인이다. 그런 그가 임기가 1년 반이나 남은 ‘개혁 대통령’에게 뒷짐지고 있으라고 하다니…. 옳은 일도 진정성 의심받는 정부 그러나 최근 대통령의 개헌제안과 국민 반응은 최 교수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개헌자체에는 찬성하는 국민이 훨씬 많다.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참여정부 임기 중 개헌에는 반대한다. 정략적, 즉 뭔가 노림수가 있지 않냐는 것이다. 대통령과 참모들의 설득 노력이 눈물겹지만 여론의 큰 물줄기는 여전하다. 옳은 말, 바른 일을 하려해도 도대체 국민들이 곧이곧대로 믿어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메주는 콩으로 쑨다는 사실조차도 대통령이 말하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다. 대통령으로서는 보통 억울한 게 아닐 것이다. 청와대는 보수언론과 야당이 사사건건 비틀어 국민들을 오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지만 언론ㆍ야당 핑계만 대는 것은 국민의 의식수준을 모독하는 것이다. 언론과 야당의 주장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국민들은 무지하지 않다. 여당에 과반수의석이 넘는 의석을 몰아주고 보수언론의 줄기찬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학개혁에 찬성하는 여론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대통령불신, 정부불신의 원인은 남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부른 것이다. 어떤 사안에 대한 대통령의 말과 인식이 시간ㆍ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게 하나 둘이 아니다. 기업을 두고 해외 순방 중에는 ‘기업이 바로 나라’ ‘국가대표는 대통령이 아닌 우리 상품’ ‘(외국에서) 미움받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잘하고 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기업이 ‘개혁 저해를 위해 경제위기론을 조장하는 집단’으로, 또 지난해 말에는 ‘특권집단’으로 몰렸다. 경제성장률 7% 공약은 상대후보가 6%를 들고나오니 ‘약 올라서’ 내놓은 것이라고 했다. 성장률이 기분 내키는 대로 해도 될 만큼 하찮은 일인가. 한나라당은 발목잡는 정당에서 대연정 제안 때는 ‘지향하는 정책이 다를 바 없는’ 우군정당이 됐다가 다시 요즘에는 반대만 하는 집단으로 변했다. 군대는 ‘몇 년씩 썩는 곳’이었다가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곳’으로 둔갑했다. 이렇게 왔다갔다하는데다 일이 잘못되면 습관적으로 남 탓을 해대니 국민들은 이제 대통령의 언행을 색안경부터 쓰고 보는 것이다. 정책불신의 기회비용 엄청나 불신의 대가는 혹독하다. 제아무리 좋은 정책도 진정성이 의심받으니 쉽게 먹힐 리 없다. 그로 인한 경제ㆍ사회적 기회비용은 엄청나다. 개헌과 부동산정책이 좋은 사례다. 대선ㆍ총선을 동시에 치르면 선거비용만 1,000억원을 절약할 수 있다지 않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의지도 의심받고 있다. 정책불신이 초래한 부동산시장 급등의 폐해는 숫자로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국가적 비극이다. 대통령이 ‘하는 일마다 역풍이 많은데 대통령이 밉고 매력이 없기 때문이며 이건 제 책임’이라고 한 것을 보면 정책불신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는 사면해달라고 했다. 사면은 잘못을 깨닫고 앞으로 잘하겠다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사면을 받고, 매력적인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다변과 핑계보다는 경청과 내 탓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대통령의 말이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을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내일 영수회담이 변화와 신뢰회복의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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