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실의 예측대로 구리는 팻감만들기에 나섰다. 흑39가 그것. 백40으로 일단 한번은 받지 않을 수 없다. 흑41로 계속 쫓아오자 이세돌은 잠깐 생각하고 백42 이하 46으로 좌변을 정비했다. 이렇게 되면 흑도 더이상 하변의 패를 미룰 수가 없다. 흑47로 메워서 패가 시작되었다. 무려 54집에 해당하는 매머드급 패였다. 구리가 쓴 팻감은 49. 검토실에서는 이곳을 안 받아 주어도 백승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이세돌은 일단 50으로 한번은 받아 주었다. “52라는 즐거운 팻감을 자랑하고 싶어서 받아 준 거예요.” 해설 담당 박정상이 하는 말이었다. 아닌게아니라 백52는 정말 짜릿짜릿한 팻감이다. 흑은 하변을 들어내고 싶지만 백이 53의 자리에 찔러 양단수를 치면 중앙의 거대한 흑대마는 활로가 없다. 흑55를 외면하고 하변을 때려내어 패전쟁은 끝났다. ‘동시에 승부도 끝났다’고 조훈현은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리는 현저하게 불리한 바둑을 던지지 않고 계속 두어나갔다. 이제 백은 안전 위주로 셔터를 내리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이세돌은 세계정상급 셔터내리기 솜씨를 보여주었다. 백58로 뛰어들어간 이 수. 박정상의 말을 빌리자면 ‘고수의 진면목을 보인’ 한 수였다. 흑은 61로 받을 수밖에 없다. 백은 여기까지만 두어놓고 손을 뺀다. 나중에 71의 자리에 잇는 것으로 끝내느냐 아니면 70의 자리(실전은 그렇게 진행되었다)에 두는 것을 선수로 활용하느냐는 좌변의 상황을 보아가면서 결정한다는 것이 이 발상의 포인트. 흑63으로 참고도의 흑1에 받는 것은 알기 쉽게 지는 길이다.(51…48의 왼쪽 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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