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정부가 내놓은 기술신용보증기금(이하 기보) 재정 건전화 방안은 내년에 쓸 돈으로 당장 돌아올 ‘빚’부터 막자는 게 골자다. 이를 위해 올해 신용보증기금(이하 신보)이 쓸 돈마저 희생됐다. 경기회복이 더뎌 세수는 부족하고 추경예산도 마련되기 전이라 쓸 수 있는 나랏돈이 빠듯하다 보니 신규자금을 조성하지 못한 탓이다. 기보의 ‘2005년 자금수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기보가 추가로 확보해야 할 자금만 4,400억원에 이른다. 예상수입이 1조1,658억원이지만 실제 지출액은 대위변제율 등으로 1조6,062억원에 달해서다. 이를 막기 위해 내년 수입 가운데 2,500억원이 전부 소진된다. 그러나 6개월 후 다시 자금이 부족할 경우에 대한 대책이 없다.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면서’ 부실을 뒤로 미뤄둔 셈이다. 신보의 동반 부실도 우려된다. 올해 은행에서 들어와야 할 돈이 고스란히 기보로 간 만큼 당장 부족해진 2,600억원을 어디서 메워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게다가 보증재원은 줄어들었지만 올 하반기 보증목표는 채워야 한다는 게 문제다. 신보 노조는 지난 21일 성명서까지 내면서 “중소기업 보증체계 동반붕괴가 불가피하다”며 “자금부족으로 올 하반기 5조원의 보증공급을 전면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쓸 돈이 부족하다는 점인 만큼 정부는 추가수입을 위해 중소기업들이 내야 하는 보증수수료도 올리고 금융기관도 더 많은 출연금을 내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내년부터 돈을 더 내야 할 은행권, 보증수수료율 인상에 따른 중소기업 등의 반발이 고민거리다. 은행권은 수익성 확보 경쟁이 치열해 현재 전체 대출금의 0.3%를 내고 있는 출연금도 아까운 판국에 정부 부실을 왜 민간이 메워줘야 하느냐는 입장이다. 오랜 경기침체로 돈 구할 곳이 마땅찮은 중소기업들 역시 업체별 보증한도를 줄이고 보증수수료를 올릴 경우 “산소호흡기를 떼고 죽으라는 얘기”라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방안들이 실현된다고 해도 얼마만큼 효과를 거둘지도 아직 미지수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대책의 상당수가 그간 기보ㆍ신보 등이 수년 전부터 추진계획을 마련해온 것들이지만 아직까지 큰 성과를 얻지 못한 정책이기 때문. 게다가 ‘시장원리에 따른 과감한 퇴출’과 ‘약자인 중소기업 보호ㆍ육성’ 사이에서 뚜렷한 지향점을 찾지 못한 채 갈팡질팡해온 정부정책의 이력도 문제다. 실제로 그간 정부가 내놓은 중소기업 정책을 보면 우량기업과 창업기업 위주로 보증지원을 집중하면서 전체적으로는 보증규모를 줄이겠다는 방침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보를 통해 3년간 10조원 보증지원을 약속하는 등 갈지(之)자 모양새다. 게다가 보증문제의 핵심인 기보ㆍ신보 통합 논의마저 참여정부 이후로 미룬 상태다. 결국 퍼주기식 지원과 부실심사로 대표되는 보증제도 전반에 대한 수술이 없다면 보증부실은 또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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