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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즐기며 일하기-이영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아시안컵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 축구의 문제점으로 '즐거움이 없다'는 것을 꼽았다. 학교에서 선수들에게 이기는 법을 가르칠 뿐 축구를 즐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어려운 여건에서 열심히 뛰어준 선수들을 충분히 자랑스러워해 달라는 자부심 섞인 당부에 이어진 일침은 적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지난 2002 한일월드컵 때 대표팀을 이끌었던 휘스 히딩크 감독 역시 즐기는 축구, 선수들이 행복한 축구를 강조했다. 투지와 승부욕을 앞세워온 역대 한국 축구 지도자들과는 사뭇 다른 시선이다.

물론 이는 학교 체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학생들이 성적을 올리는 데 급급했던 기성세대의 가르침을 좇아 과정의 즐거움을 잊은 채 시험점수에만 매달린다. 공부에 따르는 보람과 깨달음의 희열은 오간 데 없고 성적표에 적힌 석차만이 중요해져버렸다. 한국 중고교생의 수학과 과학 실력은 웬만한 나라보다 뛰어나지만 아직 노벨상 수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우수한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고서도 정작 자기가 택한 학문 분야에서 배우고 익히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학생들이 대다수다. 한 인간이 가진 에너지는 대개 육체가 아니라 정신에서 나온다. 체격 조건이 비슷한, 때로는 열세에 있는 운동선수가 거구의 상대를 제압하는 것은 정신적 우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조직의 에너지 역시 물질적 여건과 정신적 역량의 결합이다. 규모가 작은 신생 기업이 대기업과 경쟁해 이길 수 있는 힘은 조직원들의 사기와 해보겠다는 의지에서 나온다. 기업 경쟁력의 근간인 지속적 혁신 또한 조직원의 의욕과 열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의지를 지속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일이 주는 즐거움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 기쁨과 재미를 기꺼이 만끽하려는 태도다.

이따금 늦은 시간에 사무실을 나서다 보면 연구실에 불을 밝힌 채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과 마주치고는 한다. 며칠씩 밤을 새워가며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해서인지 까칠한 얼굴에 행색이 말이 아니다. 위로와 격려를 겸해 "힘들지 않느냐"고 한 마디 던지면 돌아오는 답은 대개 한결같다. "재미있는걸요." 그러나 이 말이 반쯤은 진실이 아니다. 그들이라고 왜 힘들지 않을까. 요즘처럼 즐길 거리가 가득한 세상에서 좁은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는 것은 엄청난 인내를 요하는 고역일 수밖에 없을 터. 연구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그들의 말은 절반만 진심인 셈이다. 돌이켜보면 고교 졸업 후 공과대학에 입학한 이래 40여년 동안 공학도로 살아왔다. 계속되는 연구 과정에서 좌절하고 상심한 적도 많았지만 고비마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운 것은 연구에 대한 열정과 그것이 주는 희열이었다. 일찍이 공자가 갈파한 대로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그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인이 즐기며 사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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