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좀 제록스(xerox)해 줄래?"라는 말이 빈번히 쓰일 만큼 복사기로 유명한 제록스는 더 이상 복사기 회사가 아니다. 주차권 정산 시스템이나 교통카드 시스템인 '이지패스(EZpass)', 디지털 병원의 각종 정보기술(IT) 서비스로 매출의 57%를 올리는 기업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1906년 사진인화지 제조업체로 출발한 제록스는 복사기 업체에 이어 IT 서비스 업체로 변신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제록스의 변신은 '복사기 판매사업으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날로그 카메라용 필름에 집착하다 몰락한 코닥의 길을 뒤따르지 않으려면 고부가가치 신사업을 찾아야 한다는 판단에 IT 서비스 시장으로 과감히 눈을 돌렸다.
IBM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최근 실적이 다소 부진하지만 IBM은 주력사업인 서버와 PC 사업부를 과감히 버리고 클라우드 컴퓨팅, 모바일, 비즈니스 분석, 보안 서비스 시장에 진출해 변신에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단순히 물건만 파는 게 아니라 솔루션을 팔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변신의 시작이 됐다.
창립 200년의 역사를 "과거와 결별하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표현하는 듀폰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1802년 화약 제조사로 출발한 듀폰은 1930년대부터 세계를 주름잡았던 나일론ㆍ테프론 사업을 매각하고 지금은 '글로벌 과학 기업'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유전자변형작물(GMO)을 개발하고 태양광 재료를 공급하는가 하면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스마트팜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특히 성과가 큰 바이오ㆍ농업 분야에서 이미 몬산토에 이은 세계 2위의 종자기업으로 거듭났으며 관련 특허 점유율이 15%에 달한다.
전자제품 제조사로 알고 있는 파나소닉은 테슬라와 손잡고 전기차 배터리 업체로 거듭나 재도약을 도모하고 있고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 8월에는 스마트팜 사업을 시작했다.
이 같은 변신의 첫 시작은 '자기파괴'다. 아마존은 안정적인 온라인 서점을 운영해왔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전자책 단말기 '킨들'을 선보였다. 축소될 게 뻔한 종이책 시장의 안정성을 과감히 포기하고 전자책의 성장성을 택했다.
이처럼 신사업을 정하고 자기파괴까지 결심한 후에는 신사업 담당 조직을 '가만히 내버려 두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대신 기존 사업의 영향력을 활용해 브랜드나 네트워크 등에 대한 협업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가만히 내버려뒀는데도 성과가 나지 않을 경우에는 외부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것도 해결책이다. 제록스의 경우 2009년 IT 업체인 ASC를 인수해 더 빠르게 IT 서비스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아울러 화끈한 경쟁과 보상도 '고여 있는 물' 같은 기업 문화를 바꾸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듀폰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채드 홀리데이는 실적이 줄어들자 직원들을 두 팀으로 나누고 4개월 동안 가장 훌륭한 제품을 개발하는 팀에게 1만달러와 1주 휴가를 주겠다고 했다. 4개월 후 두 팀은 27개의 신제품을 쏟아냈다. 이후 듀폰의 매출은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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