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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에 디플레이션 먹구름"
입력2002-12-02 00:00:00
수정
2002.12.02 00:00:00
미국 거품경제 붕괴.이윤율저하 비제조업까지 확산
■ 붐 앤 버블(로버트 브레너 지음/아침이슬 펴냄)
지난달 14일 한국은행은 '세계경제 디플레이션의 가능성과 영향'이란 보고서에서 "가계와 기업의 높은 부채와 맞물려 우리나라에도 디플레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본 미국 독일 등 주요 국가가 디플레에 빠지면 한국도 경기침체에 따른 디플레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세계경제에 '디플레이션'이라는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미국의 10월중 개인소비가 0.4%, 내구재 주문은 2.8% 늘어 예상을 초과했다는 최근의 소식에도 불구하고 과잉설비ㆍ과잉생산에서 비롯된 구조적 모순으로서의 디플레이션 우려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좌파 경제학자인 로버트 브레너의 저서 '붐 앤 버블'은 세계적인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에 기인한 기업의 이윤저하와 디플레이션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부제는 '호황 그 이후, 세계 경제의 그늘과 미래'.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교수인 로버트 브레너는 1970년대 '봉건제-자본주의 이행'논쟁(브레너 논쟁)을 주도한 학자로 당시 그가 제시한 사회적 소유관계와 계급투쟁에 기초한 이행논리는 이제 중세 유럽사 연구에서 하나의 이정표로 자리잡았다. '자본주의 이행논쟁'(1995년, 한겨레 펴냄) 참조.
또한 1998년에는 '신좌파평론'에 270여쪽에 이르는 '불균등 발전과 장기 침체:호황에서 정체까지 선진 자본주의 경제 1950~1998년'라는 논문을 발표, '신 브레너 논쟁'을 촉발했다. 이 논문에서 브레너는 세계경제의 위기가 노동자 투쟁에 따른 이윤 압박 때문이라는 좌파 경제학의 통설을 부정하고, 각 나라 자본들의 무한경쟁이 과잉생산과 과잉설비를 초래한 결과라는 주장을 폈다. '혼돈의 기원: 세계경제 위기의 역사 1950~1998'(2001년, 이후 펴냄) 참조.
'혼돈의 기원'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과잉생산과 과잉설비의 위기에 직면한 세계자본주의의 암울한 앞날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는 "거품 호황은 끝났다. 더불어 신경제의 마법도 사라졌다"고 선언하면서 미래의 세계경제는 과잉설비ㆍ과잉생산으로 인한 기업의 이윤율 저하로 극심한 불황에 처할 수 밖에 없다고 내다본다.
저자에 따르면 사태가 이처럼 심각해지기까지는 몇 가지 속임수가 존재한다.
우선 '신경제의 마법'이라는 속임수다. 1997년 동아시아의 경제위기는 분명 1973년 이후 확대 심화돼왔던 과잉생산 문제의 폭발이었는데, 미국은 인위적 거품경제에 힘입어 이 위기를 잠시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1998년부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ㆍ이하 '연준')의 지원 덕분에 거품에 기초한 투자 및 소비의 증가가 제조업 이윤율의 증가, 국제경쟁력 제고, 수출 증가를 대신하여 미국 경제를 성장시켰다. 이로써 미국경제는 동아시아 위기로 나타난 제조업의 국제적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을 한동안 교묘하게 피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2~3년간의 거품경제는 대규모 금융불균형을 감당키 힘은 유산으로 남겼다. 여전히 고평가된 미국 주식시장,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 미국의 대규모 해외채무, 미국 민간 부문의 기록적인 적자 등이 세계경제에 드리운 암운이다.
문제는 미국 금융당국이 마땅한 방어기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 브레너는 "미국 연준이 '이중의 덫'에 갇힐 것"이라고 경고한다. 연준은 금리의 지속적 인하를 통해 유동성을 제고하여 경제를 굴러가게 하고 미국 자산의 가치를 방어할 필요를 느끼지만, 이와 동시에 해외에서 지속적으로 자금을 유치하여 달러 가치를 유지함으로써 미국의 사상 유례없는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금리 인상의 필요성도 그만큼 절실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거품경기에 기반한 미국의 경기진작책은 제조업 부문의 과잉설비ㆍ과잉생산 문제를 비제조업 부문까지 확대시킴으로써 세계경제의 질곡을 치유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넣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다 과잉생산으로 인한 디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해 있는 일본ㆍ중국 등이 해외 수출 확대를 통한 이윤율 회복을 위해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 또 다른 암초로 상존하고 있다.
이 경우 1997년 동아시아 위기가 다시 한번 재연될 가능성이 큼은 물론, 미국 경제가 기진맥진 한 상황에서의 이 지역의 경제위기는 상상을 뛰어넘는 메가톤급 충격을 몰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속임수는 '정실자본주의'이다. 미국은 1997년 당시 동아시아 경제를 '정실자본주의'라고 맹공을 퍼부었지만, 알고보면 미국이야 말로 가장 부패한 '정실자본주의' 국가라는 것.
그는 "2001년 1월 이후 파산한 미국 25대 공기업의 경영자와 이사는 자기네 회사가 파산했을 때 자그마치 33억달러를 챙겼다. 또한 1997~2001년 통신산업의 내부거래자는 주식을 매각하여 무려 180억달러의 현찰을 가로챘으며, 그것도 그 거래의 대다수가 통신산업의 주가가 정점에 도달했던 2000년에 이뤄졌다"며 미국의 속임수를 공격한다.
문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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