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통보한 할당량대로라면 매년 수백억원씩 '생돈'을 물어야 합니다. 중국·일본 등 경쟁업체를 이겨낼 재간이 없습니다."
정부가 지난 1일 525개 제조업체에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량'을 통보한 가운데 온실가스 배출 부담이 큰 철강·발전·석유화학 업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배출권 거래제를 내년부터 시행하되 오는 2017년까지는 기업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결국 '공약(空約)'으로 판명된 탓이다.
배출권거래제는 기업들이 공장을 돌려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정부는 9월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며 재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내년 1월1일 시행을 확정한 바 있다.
기업들은 우선 할당량이 터무니없이 적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앞으로 3년 동안 배출할 수 있도록 허락한 배출권의 총 수량은 15억9,800만톤으로 같은 기간 업계가 할당해 달라고 신청한 20억2,100만톤과 비교해 약 4억2,300만톤가량 부족하다. 부족한 할당량을 시장에서 톤당 1만원에 매입할 수 있다고 가정해도 4조2,300억원의 부담금이 발생하는 셈이다. 만약 시장에서 매입하지 못하면 1만원의 3배인 톤당 3만원을 부담금이 발생한다.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환경부가 할당 신청 요건을 매우 까다롭게 만들어 최소한만 신청한 것이 이 정도 수준"이라며 "철강·석유화학 업체는 매년 적게는 수십억원, 많게는 수백억원의 부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발전 업계의 경우 3년간 부담금이 1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가 배출권거래제의 시장 기능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 지 여부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도 크다. 기획재정부와 환경부 등 주무부처는 9월 배출권거래제 시행계획을 밝히는 자리에서 "배출권의 가격이 톤당 1만원을 넘기면 정부가 비축한 물량을 시장에 풀어 매매가를 낮추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이 단순한 '주먹구구식' 수급 조절로는 배출권 가격의 급등락을 막기 어렵다는 게 기업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회사 자체적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전체 배출권 공급량과 수요량의 격차가 ±3%를 넘기면 시장이 붕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부작용이 예상 밖으로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만약 수급 조절 기능이 무너질 경우 기업들은 온실가스 1톤당 최대 10만원의 부담을 물어야 한다.
정부의 배출권 '드라이브'로 우리 제조업의 국제 경쟁력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해 미국과 중국이 최근 온실가스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그 강도는 한국이 가장 세다는 것이다. 예컨대 중국의 경우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연동해 GDP가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쉽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배출권 거래제로 페널티만 주면서 기술개발에 따른 지원금은 전혀 책정하지 않아 제도 자체가 징벌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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