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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부처에서 전산정보 관리관을 지낸 A씨는 지난 2012년 퇴직 후 2주 만에 KT 전무로 재취업했다. 이 부처에서는 그해에 3명의 4급 이상 고위공무원이 같은 기업의 부사장과 감사·자문으로 재취업했다. 이들은 모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재취업 심사를 통과했다.
#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B씨와 주변의 중소기업 사장들은 요즘 퇴직공무원을 고문으로 모시느라 힘이 든다. 재취업 자리가 줄어든 퇴직공무원이 중소기업 고문 자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퇴직공무원이 약 2~3년간 고문을 맡고 그만둔 후에도 1~2년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는 게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이야기다.
고위공무원의 재취업을 금지한 공직자윤리법의 현실이다. 한마디로 원칙과 현실이 따로 놀고 법이 현장에서 겉돌고 있다는 지적이 딱 맞다. 법적 규제는 엄격하지만 세부규정이 없기 때문에 실제 재취업 심사 과정에서 통과율이 높다. 또한 삼권분립과 지방자치제를 근거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철저히 비공개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금융감독원 등 일부 부처는 아예 내규로 재취업 자체를 금지했다. 관련 업무를 맡은 고위공무원뿐만 아니라 경력 5년 이상인 모든 직원의 재취업이 막힌 것이다. 이처럼 명확한 원칙 없이 공무원 재취업 규제가 운영되면서 전면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하위직 공무원은 생계형 취업인 경우도 막히는 반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일부 공직자윤리위는 사실상 기능을 하지 못한 채 연관성이 있는 대기업에 재취업을 허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 자체는 엄격하다. 기업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하는 중앙부처 출신 고위공직자가 대기업이나 대형 로펌에 재취업하는 것은 불법적인 청탁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4급 이상 공무원과 경찰, 소방, 감사 및 조세, 건축, 토목 등 인허가 부서 근무자는 5~7급 공무원은 물론 금감원·한국은행 등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도 재취업 심사를 받아야 한다.
매년 정부는 재취업 심사를 받아야 하는 4,000개 이상의 사기업체 명단을 공고하고 있다.이 회사에 재취업하려는 고위공무원은 퇴직 전 5년간 소속부서 업무와 밀접한 업무관련성이 있는지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는 고위공무원의 퇴직 2년까지 해당한다.
그러나 실제 안전행정부 소속 공직자윤리위 심사의 통과율은 평균 90%를 넘는다. 물론 여기에는 5~7급의 비교적 하위직 공무원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이유는 업무 연관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해당 부처가 아니라 해당 직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장급 공무원이 재취업할 경우 해당 과의 업무만 아니면 재취업이 가능하다. 또한 국세청의 경우 지방의 일선 세무서에서 일하다 다른 지역의 사기업체에 취업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국민 정서상으로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대기업에 과징금을 매기는데 어떻게 해당 부처 공무원이 대기업에 재취업하겠느냐고 하지만 실제 심사 과정에서는 공무원이 소속된 직위에 해당하는 업무의 연관성을 보기 때문에 국민 시각과 다소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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