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채권에 대한 외국인의 매수세가 좀처럼 줄지 않는 가운데 국가신용등급 상승에 이어 미국의 3차 양적완화(QE3)까지 전격적으로 단행되면서 원화채권을 사는 외국인의 얼굴이 바뀌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이나 태국ㆍ일본 등 전통적 강자의 매입 강도가 주춤한 사이 노르웨이나 스위스ㆍ룩셈부르크 등이 새로운 매입주체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매입 강도가 매우 높아지면서 우리 정부가 스위스중앙은행 등에 매입 수위를 조절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16일 "만기상환 등의 영향도 있지만 최근 유럽계 자금의 원화채권 투자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유로화를 중심으로 외환보유액 확대를 꾀했던 유럽의 스위스나 룩셈부르크 등의 중앙은행들이 원화채권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16일 한은과 금융감독당국 등에 따르면 올 들어서만 외국인들이 3조원 넘게 순투자에 나선 가운데 신용등급의 상승, QE3, 여기에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 등이 맞물리면서 원화채권 투자 매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머징마켓 가운데는 드물게 30년짜리 국채를 발행한 것도 원화채권에 대한 인기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올 들어 노르웨이ㆍ스위스ㆍ룩셈부르크 등 유럽계 자금의 원화채권 순투자(순매수-만기상환)가 1~3위를 기록할 정도로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8월 말 현재 노르웨이는 2조7,460억원 규모의 원화채권 순투자를 했고 스위스 2조1,360억원, 룩셈부르크 1조3,170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노르웨이와 스위스는 8월 한 달에만 각각 4,500억원, 4,150억원 규모의 순매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반면 지난해 말까지 순투자 상위 1~5위에 있던 말레이시아ㆍ중국ㆍ카자흐스탄ㆍ독일ㆍ싱가포르 등 가운데 중국만이 3위를 기록해 원화국채에 대한 손바뀜이 활발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원화채권 매입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4~5가지의 요인을 꼽는다.
무엇보다도 국가신용등급 상향 조정 효과다. 실제로 지난달 27일 무디스의 신용등급 상향조정이 발표되자 4일간 6,217억원의 채권 매수가 이어졌는데 상당 부분 유럽계 자금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계 자금은 원화채권 순투자 규모를 5월 7,521억원, 6월 5,484억원, 7월 1조6,736억원으로 끌어올리더니 8월에는 속도를 조절해 2,926억원을 기록했다. 윤여삼 대우증권 수석 연구원은 "최근 연이은 신용등급 상향 등을 계기로 중장기적으로 외국 중앙은행뿐 아니라 해외펀드 등의 유입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들어 원화채권 매입을 늘리고 있는 노르웨이나 스위스 등의 자금유입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측됐다. 무엇보다도 이들 두 국가는 자국의 통화가치를 방어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유로화를 쓰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노르웨이나 스위스 등은 재정위기 등을 겪지 않았고 이에 따라 통화가치도 상승하는 추세"라면서 "통화방어를 위해서도 원화채권 투자를 늘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QE3도 원화채권 매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됐다. 달러자금이 올해 들어서는 다소 속도조절은 했지만 양적완화로 자금이 더 풀리면서 한국으로의 유입에 다시 속도를 낸다는 얘기다. 미국은 8월 말 현재 16조2,900억원의 원화채권을 매입한 최대 보유국가다. 홍정혜 신영증권 연구원은 "유로존 위기가 확대될수록 원화채권을 매입하는 경향이 있는데 원화채권이 위험자산보다는 안전자산으로 평가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또 주요 국가의 국채수익률이 1% 안팎인 데 반해 원화국채 수익률이 3%선이라는 점도 매력적인 요인이다. 유럽과 달리 재정위기를 겪지 않았고 경제성장률도 3%대로 미국이나 유럽 등에 비해 높다. 올해부터는 원ㆍ달러 환율의 변동폭이 작아 환리스크의 노출 위험도 낮아 외국정부나 펀드에는 한국채권의 투자 메리트가 크다.
정부당국의 한 관계자는 "외국투자가들은 우리 정부가 30년짜리 국채를 발행한 것으로 두고 한국의 채권시장이 선진화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국가신용등급 상향,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 안정적인 환율 등의 요소와 맞물려 외국인의 자금유입을 경계해야 할 정도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